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2월 22일 16시16분
[아침발걸음]고창 죽림리 고인돌 아-1에 담긴 동지 일몰경
이 고인돌 군락은 단순한 묘제 유적이 아니다. 지형과 기후, 태양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조성된, 선사시대의 고도로 조직된 ‘천문지리 시스템’이다. 돌을 세운 위치 하나하나에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 작동하고 있다.
죽림리 아군이 자리한 해발 44미터의 구릉은 지형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인 공간이다. 북쪽의 호암산과 북서쪽의 고성봉이 반원형으로 둘러서며 강한 북서계절풍을 차단한다. 이 지형적 차폐 효과는 국지적인 미기후를 형성해,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온화한 환경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선사인에게 이는 단순한 풍수적 감각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경험적 지식의 결과였다.
남쪽으로는 고창천이 흐르며 넓은 범람원을 만든다. 반복된 퇴적 작용으로 형성된 충적 평야는 청동기 시대 농경 사회가 잉여 생산을 축적할 수 있는 토대였다. 고인돌은 종종 권력과 의례의 상징으로 해석되지만, 그 이면에는 분명한 경제적 기반이 존재한다. 죽림리 고인돌 아군은 이 지역에 이미 조직화된 공동체와 사회 구조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 유적의 진정한 특징은 ‘하늘과 땅을 향한 시선’에 있다. 동쪽의 갯당산은 고도가 낮고 완만해, 태양의 일출 위치 변화를 관측하는 데 거의 방해가 되지 않는다. 이는 우연한 지형 조건이 아니라, 천문 관측에 유리한 장소를 선택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특히 아군의 중심을 이루는 ‘아-1 고인돌’은 선사 천문학의 정수이자 동짓날의 의미를 보여준다. 장축 길이 약 4.9미터에 달하는 이 거대한 고인돌은 명확한 방향성을 지니고 있다. 현장 측량 결과, 고인돌의 전면 축은 동짓날 태양이 지는 방향과 거의 정확히 일치한다. 동지는 태양의 고도가 가장 낮아지는 날이자, 다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전환점이다. 동양 사상에서 말하는 ‘일양시생’, 즉 음의 극점에서 양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선사인들은 이 태양의 회귀를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삶과 죽음, 소멸과 재생의 질서로 이해했다. 동짓날 저무는 태양을 고인돌의 축선에 정렬시킨 것은, 죽음 이후의 재생을 태양의 운행과 겹쳐 놓은 장엄한 공간 선언이었다. 고인돌은 무덤이기 이전에, 우주 질서를 인간의 삶 안으로 끌어들인 상징적 장치였다.
죽림리 아군의 또 다른 특징은 개별 고인돌이 아니라 군집 전체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이 일대에 분포한 7기의 고인돌은 하지와 동지, 춘분과 추분이라는 ‘2지 2분’의 태양 궤적을 나누어 관측하도록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들은 자연 그대로의 기준점이 되어, 인공 구조물과 결합된 거대한 선사시대 천문대 역할을 수행했다.
덮개돌 위에 남아 있는 성혈 역시 주목할 만하다. 무작위로 파인 흔적이 아니라, 특정 별이나 성군을 상징적으로 옮겨 놓은 성도일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낮의 태양뿐 아니라, 밤하늘의 질서까지도 땅 위에 새기려 했던 선사인의 지적 수준을 보여준다.
오늘날 죽림리 고인돌 아군은 행정 경계 밖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 유적이 담고 있는 지형학적 합리성과 천문학적 정밀성은,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창 고인돌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곳은 고창 고인돌 문화의 깊이와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다.
밭 한가운데, 민묘들과 어우러진 이 돌들은 침묵하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3천 년 전, 하늘과 땅의 이치를 읽으며 살아갔던 사람들의 지적 유산이 그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제 그 돌의 언어를 알아듣고, 지켜낼 책임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몫이다./이병렬(고창문화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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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2-23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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