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1월 20일 14시06분
[온누리] ‘쌍천, 메아리치다 ’ 일제강점기 두 의사의 인술
세브란스의전 졸업 후 조선인 최초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화호리 자혜진료소에서 진료를 시작한 이영춘 박사는 병을 고치는 일과 글을 가르치는 일을 분리하지 않았다. 글을 읽을 줄 모르면 자신의 이름조차 지킬 수 없는 시대였다. 그는 환자의 손을 잡아 병을 치료했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며 이름과 자존을 되돌려 주었다. 농촌 위생을 개선하고 생활 수준을 높이려는 그의 노력은 단순한 의사로서의 임무를 넘어, 공동체를 일으키려는 깊은 사랑의 실천이었다.
그 옆에는 언제나 조용히 헌신하는 김성환 박사가 있었다. 김성환은 1941년 세브란스 의전 졸업 후 화호리에 와 정읍·김제·부안 지역을 돌며 지역 의료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그는 마을을 돌며 사람들의 몸과 삶을 함께 보듬었다. 해방 후 그는 병원을 세우고,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농촌의 미래를 새롭게 그렸다. 잠시 정치에 발을 들였지만 그는 곧 다시 본래의 자리, 사람을 돌보는 삶으로 돌아왔다. 그의 생은 길지 않았으나 화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울림으로 남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지난 15일 저녁 7시 정읍문화원 역사문화극단 메아리의 연극 ‘쌍천, 메아리치다’를 통해 정읍연지아트홀 무대 위에 다시 되살아났다. 작품을 쓴 조은아 작가는 말한다. “이영춘은 병을 고치는 일과 글을 가르치는 일을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가져야 하고, 그 이름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이 작품은 국가를 빼앗긴 시대에도 사람답게 살고자 했던 이들의 기록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메아리는 소리의 힘이 아니라 되돌아오는 마음의 힘으로 울린다. 무대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메아리가 멈추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가길 바란다.”
두 의사의 삶은 시대의 어둠 속에서 인간 존엄을 지키려 했던 실천의 역사이며, 한 시대를 밝힌 작은 등불이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오늘 우리에게 도달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누군가의 손을 잡는 일, 이름을 지켜주는 일, 공동체의 마음을 잇는 일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다음 세대에게 그 메아리를 어떻게 전할 것인지…’ 메아리처럼 일깨우며 말이다.
/오승옥(마을활동가·관광학박사)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5-11-21 6면
http://sjbnews.com/865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