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1월 05일 16시24분
소통하는 독자를 위한 춘향가
임승범 '춘향가'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춘향가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인의 정서에 닿아 있는 내용일 터, 한편으로는 분명 들어 보았지만 읽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뭐한 고전처럼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면도 있다.
이 과정에서 당대 사람들의 바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를테면 박력 넘치는 어사출두 장면이 그러하다. 실제 어사출두는 춘향가 속 장면에 비해 단출할 수밖에 없다. 많은 수의 역졸을 동원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암행어사로 임명되는 인물이 왕의 신뢰를 받는 측근이기는 하지만 실제 직급은 그리 높지 않아 지방 고관을 호령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춘향가 속 어사출두가 판을 뒤집을 만큼 강력하고, 호쾌한 것은 백성의 고혈로 잔치를 벌이는 탐관오리들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며, “춘향이가 품고 있는 사랑에 대한 그 당시 사람들의 화답”인 것이다.
현실과 바람이 교차하는 또 다른 명장면으로 어사 몽룡이 남원으로 가는 길에 듣게 되는 농민가 가사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초창기 판본에서는 농부의 바람을 담은 듯 태평성대를 노래하던 순한 맛 가사가 지배계층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 맵게 담긴 가사로 변해가는 과정은 당시 춘향가를 향유하던 계층의 사고방식, 심경의 변화와 궤를 같이했을 터이다.
춘향가 속 인물들 역시 현실성과 허구성을 골고루 갖춘 존재이다. 오늘날 방자는 몽룡의 단짝이자 춘향가의 감초 같은 인물로 인식되지만 초창기 판본들에서는 그 존재감이 미미하다. ‘방자’는 본디 사람 이름이 아니라 관청에 소속된 하인을 이르는 말로 몽룡과의 만남도 공적이고, 일시적이었어야 할 것을 소리꾼이 춘향가를 설득력 있게 꾸려 나가는 과정에서 그 역할이 확대되고, 보다 입체적인 인물로 재탄생했다.
악역 변학도가 당대의 시각으로 보면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나, 거지꼴로 나타난 몽룡에게 술을 권하고, 탐관오리를 꾸짖는 시를 지을 수 있도록 돕는 운봉 현감을 조명하는 부분은 춘향가를 접하는 시선에 깊이를 더한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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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1-07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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