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1월 04일 14시42분
[온누리]문화유산도 과학이다
젠슨 황이 삼성·현대 CEO들과 치맥회동을 하고, 엔비디아가 한국의 AI 발전에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GPU를 26만장이나 공급하기로 선언한 요즘, 모였다하면 쳇지피티와 딥시크가 화제의 중심이 된다. 첨단과학의 끝판왕 AI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지금, 문화유산도 과학이라는 주제는 어쩌면 진부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백제 폐사지 터에 두 덩이로 쪼깨져 전해오는 석조물이 그렇게 된 이유가 1,400여년 전의 낙뢰에 의한 물리력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지질학 연구에 이르면, 과학이 닿을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새삼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지난 달 하순, 익산시와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개최했던 '익산, 관세음응험기를 논하다' 학술회의의 주요 연구 테마는 관세음응험기였다. 백제사와 익산 백제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이 기록물은 너무나 소중한 자료이다.
1950년대 초 일본 교토의 사찰 쇼렌인에서 발견된 이 기록물이 우리나라에 알려지게 된 것은 자료를 찾아낸 마키다 다이료 교토대학 교수에 의해서였다. 1970년대 초 한국을 방문한 마키다 교수는 그 얼마 후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학술회의에서도 이 기록에 대해 발표한 바 있다. 이 사료에서 특히 주목되는 내용은 무왕 때 백제는 익산으로 천도하였으며, 천도 당시에 지었던 사찰 제석정사가 639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왕은 절을 다시 지으라고 했다는 부분이다. 이 자료의 내용을 입증이라도 하듯 익산 제석사 터에는 목탑의 심초석으로 추정되는 석조물이 두 덩이로 갈라진 채 의연하게 폐사지를 지키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와 본격 시행된 절터 발굴조사 결과, 제석사는 불이 났고, 화재의 잔해물은 사찰 북편(지금의 제석사 폐기유적)에 버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번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제석사 목탑 낙뢰의 과학적 검토'에서는 1년 중 벼락이 가장 많이 치는 겨울 12월, 639년의 어느 날에 있었던 벼락이 너른 평야에 우뚝 세워져 있는 7층 목탑에 내려쳐졌고, 그로 인해 절이 불타고 목탑의 심초석은 두 동강이 났을 것이라고 연구된 것이다. 이 벼락에 의해 쪼개진 심초석은 1,40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그 상태 그대로였다는 발표를 들으면서, 이 과학적 연구방식이 화재 후에 제석사의 재건축이 기록대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한 의문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익산의 고고유적 중 과학으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거나 생명력을 얻은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반쯤 부서진 상태로 오랜 세월을 견뎌온 미륵사지 석탑은 20년 동안 투입된 최첨단의 과학적 해체 보수 방식에 힘입어 석조 건축물 복원의 우수 사례가 되었다. 2018년 익산쌍릉 대왕릉에서 출토된 인골은 카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전문가들의 과학적 분석 덕분에 그 주인공이 무왕임을 밝혀냈다. 왕궁리유적은 또 어떤가. 조사과정에서 확인된 냄새 지독한 흙 구덩이가 사실은 백제사람들이 쓰던 화장실이었다는 것도 구덩이의 흙을 분석한 결과였다. 고고유적의 조사 과정에서 나온 자료들이 과학자의 손길을 거치면서 더욱 탄탄한 역사성과 가치를 갖추어 간다. 앞으로 또 어떤 유적이 과학을 만나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어나갈지 기대가 크다./문이화(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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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1-05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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