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10월 30일 13시58분
[새전북이 만난 사람]“K-문화는 K-영성 문화를 품어야 합니다”
박광수 명예교수/K-전통문화학술원 이사장-태국 탐마삿대학과 15년 이어온 한국학 교류
박 교수는 지난 15년간 태국 국립대학인 탐마삿대학과의 인연을 이어오며, K-문화의 범위를 단순한 대중문화에서 K-Religions, K-영성 문화로 확장하는 데 주력해왔다.
Q. 태국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A.제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태국의 한 대학원생(Thapakorn Kamnerdsiri)이 한국 불교 연구를 하겠다며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국 종교 전반에 대한 상황과 새로운 종교운동인 원불교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한국 종교사상의 새로운 영역을 접했습니다. 이후 태국 국립대학인 쭐랄롱꼰 대학교(Chulalongkorn University)에서 보조 지눌 연구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지금은 탐마삿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한국학연구소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가 방콕 원불교 교당을 통해 저를 다시 한국에 찾아오게 되면서, 10년 만에 인연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Q. 탐마삿대학 한국학연구소와의 협력 과정이 궁금합니다.
A.토니 교수는 한국학 연구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고, 저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외 대학 지원 사업을 연결했습니다. 지난 3년간 매년 6,000만 원, 총 1억 8,000만 원의 지원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한국 문화, 사상, 종교에 관한 연구와 교육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 탐마삿대학에서는 매년 1,000여 명의 학생들이 한국 문화 강좌를 수강하고 있으며, 한국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A.
지난 2023년부터 매년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한국학의 여러 분야를 탐구했습니다. 지난해에는 “Korean Culture and Innovation”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이 열렸고, 저 역시 기조 발표를 맡았습니다.
올해 8월에 탐마삿대학에서 열린 태국 내 한국어 및 한국학 관련 8개 대학이 공동주최한 11차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 강연을 통해 한류(K-Culture)를 단순한 대중문화 차원을 넘어 K-Religions, K-종교적 영성 문화로 확장해야 하는 것이 중요함을 제시했습니다. 지금까지의 한류는 음악·드라마·영화 중심이었지만, 앞으로는 홍익인간과 해원 상생과 같은 전통 사상과 종교적 영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태국 불교가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삶을 중시하듯, 한국 전통 역시 하늘과 인간의 조화, 평화와 공존을 중핵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양국 학자들과의 공동 연구, 학생 교류, 교육 협력이 지속해서 이루어질 때 평화와 상생의 문화가 형성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올해 8월 학술대회에서는 특별히 K-전통문화학술원 원장인 이승연 교수님이 한국 서화를 발표하며 학문적 저변을 넓혔고, 별도로 5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한글 서예 워크숍은 학생들의 열정적인 참여와 창의적 결과물이 돋보였습니다.
Q. 교수님께서 강조하시는 ‘K-문화의 확장’은 무엇입니까.
A.지금까지의 한류는 K-Pop, K-Drama 등 대중문화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한류의 미래는 한국 고유의 심층 문화, 즉 K-Religions와 K-종교적 영성 문화의 확산에 있습니다. 한국은 제천의례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유한 사상과 전통을 지닌 나라입니다. 이 가치들이 세계와 공유될 때 한류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보편적 공공성을 지닌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Q. 태국 불교와 한국 영성 문화는 어떤 접점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A.태국 불교는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삶을 중시합니다. 한국 전통 종교문화 또한 홍익인간, 해원 상생, 인내천 등 인간과 공동체의 조화를 핵심으로 삼습니다. 이러한 공통된 지향은 평화와 공존을 위한 철학적 기반이 됩니다. 그래서 태국 학자들과 함께 불교의 사회적 역할, 영성 문화의 현대적 의미를 연구하고, 이를 아시아적 차원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문명 간 대화로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Q.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마음의 생명의 지도력’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A. 탐마삿 대학은 4만여 명의 학생들이 있는 태국의 국립종합대학입니다. 다른 유수한 대학이 한국어를 중심으로 한 학과가 개설되어 있습니다만, 탐마삿 대학은 한국학 전공학과를 신설하여 학부생들이 한국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AS201(Korean Culture and Innovation) 수업을 듣는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였습니다. 한국 문화와 혁신이라는 과목에 1,000여 명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을 한 것에서 한국에 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놀라움과 자랑스러움을 함께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마음과 생명의 지도력(Leadership of Mind and Life)”을 강조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타인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다스리고 용기를 잃지 않으며 생명을 존중하는 공동체적 책임을 실천하는 힘입니다.
BTS의 노래나 애니메이션 K-Pop Demon Hunters의 사례에서도 한국의 전통문화와 K-Pop이 융합되면서 자기 정체성과 자존감을 지켜내는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만의 빛을 세상에 드러내어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에서 생명과 평화를 실현하는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야말로 K-문화가 전하는 핵심 정신이자 영성 문화로 확장되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Q. 현장에서 학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A. 강연이 끝난 뒤 학생들은 자리를 줄지어 다가와 질문을 쏟아냈고, 사진 촬영 요청이 이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학생들 눈빛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으로 반짝였습니다. “한국 문화를 단순히 드라마와 노래로만 알았는데, 그 이면의 철학과 정신을 배우게 되어 감동적이었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이승연 교수의 한글 서예 워크숍에 참여하여 붓을 잡은 학생들의 손끝은 서툴렀지만, “평화, 사랑, 한글” 등의 글씨를 종이 위에 써 내려갈 때마다,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모습에 저절로 희열의 미소를 짓게 되었습니다. “한 글자 한 글자에 철학과 정신이 담겨 있다는 것을 체험하면서 한국의 깊은 문화를 느꼈다”는 소감을 전하면서 한글 서예가 태국에서는 예술과 문화로 성장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이승연 교수님이 태국에서 한국 서화의 사상과 특성에 대한 세미나 발표와 학생들을 위한 한글 워크숍을 이끌어 주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Q. 앞으로의 교류 비전은 무엇입니까.
A.저는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의 상생’을 추구합니다. 한국과 태국은 모두 영성 문화의 깊은 뿌리를 가진 나라입니다. 앞으로 양국 학계가 공동 연구, 교육, 학생 교류를 더욱 강화한다면, 아시아가 세계 문명사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태국 학자들과 학생들은 한국의 전통과 영성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은 한국학의 세계적 미래를 보여줍니다. 양국이 함께 문명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탐마삿 대학에서 한국학연구소장을 맡은 토니 교수는 오랜 연구를 통해 태국에서 보조 지눌에 대한 저서를 태국어로 출간하였고 원불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태국 공영방송국에서도 한국의 전통불교와 원불교에 관한 관심을 보이며 인터뷰를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K-전통문화학술원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학문적·문화적 가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입니다.
박광수 명예교수는 K-전통문화학술원을 통해 한·태 학문 교류를 기반으로 한 K-문화와 K-종교적 영성 문화의 세계적 확산이라는 더 큰 비전을 담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학생들의 반응은 그가 말한 ‘한류의 심층화’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이미 살아 있는 교육과 문화 체험을 통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15년간 이어온 인연과 지난 3년간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체계적 지원은 한국학 연구의 성과로 이어졌고, 원광대학과 MOU를 체결하는 결과가 이루어졌으며, 학생과 학자 모두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학문적 교류와 청년 교육을 통해 한·태 양국이 공동으로 만들어갈 “평화와 상생의 문명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의 활동은 아시아 속 한국학과 K-영성 문화의 지평을 넓히는 중요한 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익산=고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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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0-31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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