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10월 29일 14시28분
[금요수필]소박한 할머니의 꿈이 보랏빛으로
이종순
무안을 거쳐 역사의 한이 서려 있다는 목포에 이르렀다. 영혼이 거쳐 간다고 해서 영달산이라고도 부르는 유달산은 목포의 8경 중의 하나로 임진왜란을 떠올리는 노적봉을 품고 있다. 여행길의 추억을 간직하려고 눈앞의 풍경들을 렌즈에 그려 넣으려는 여행객들의 휴대-폰 셔터 소리에 우리 일행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듯, 멋있게 한 컷 한 컷 농담과 정성을 담아 추억의 장을 만들어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때가 되어 맛집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며 의견을 모아 항구도시 목포의 꽃게 매운탕 집에서 달콤한 음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신안 앞바다의 섬, 천(千) 개를 이었다고 해서 2019년 4월에 개통한 ‘천사(1004) 대교’를 건너 퍼-플 섬을 향했다. 신비의 섬들을 빨리 보고 싶은 생각으로 페달에 재촉을 더해서 도착한 그곳은 보라색 물결로 온 마을이 넘실넘실 춤을 추며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천사대교’는 인천대교, 서해대교, 영종대교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해상교량이다.)
신안군은 유인도와 이름 없는 무인도를 합해 천여 개가 넘는다고 해서 다도해(多島海)라 부른다. 퍼-플 섬이라는 곳은 신안 안좌도(安佐島)의 부속 섬인 반월도(半月島)와 박지도(朴只島)를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퍼플 교는 ‘평생 박지도에서 살아온 김매감 할머니가 입버릇처럼 두 발로 걸어서 섬을 건너고 싶다’라는 소박한 소망이 씨앗이 되어 열매를 맺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에 이 두 섬에서 많이 나는 왕 도라지꽃, 꿀 풀꽃, 콜라비꽃 들이 지천으로 피어 보라색이라는 점에 착안하여 섬을 이어 만들어진 교량을 보라색으로 단장해서 ‘퍼플교’라는 예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푸른 하늘과 보랏빛을 띄우는 바다가 어우러지는 해맑은 가을의 정취가 일상에서 찌든 감정을 말끔하게 씻어주고 있다.
이곳 퍼플 섬은 온 마을을 동화 속의 마을처럼 만들어 놓은 걸 보면서 그 할머니의 소원이 우리 모두의 소원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아름다운 퍼플 섬을 걸어서 여행할 수 있게 해주신 할머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어쩌면 쓸쓸해질 수도 있는 이 가을에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해 질 녘이 되니 퍼플 섬에도 다시 바닷물이 들어와 저녁노을의 하늘은 황금빛 물결로 춤을 추고 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니 이미 퍼플 섬의 풍경은 할머니의 꿈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바다 위에 둥그러니 떠 있는 외로운 섬이 아닌, 이제는 우리들의 섬이 된 남해바다의 물결은 살랑살랑 신비로움을 더해갔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도 신안 섬의 아름다움에 취해 수다를 떨었고, 구름 위에 그 할머님의 얼굴이 몽실몽실하게 피어오르며 우리 일행에게 작별인사를 주고 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아름다운 스토리로 이어진 신안의 보랏빛 섬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감정을 이 시월의 가을날에 오래오래 기억해 두고 싶다. 그리워했던 퍼플 섬, 이제 는 추억의 장으로 새겨 넣는다.
이종순 수필가는
'문예사조'로 수필 등단, '시조문학'으로 시조시인 등단.
문학박사. 우석대학교 대학원 외래교수
한국국보문학 시조부문 대상 수상.
교육부 유보통합 연구진 교육부장관상 수상
'창의 숲 연구소'와 '아이가 크는 숲' 대표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5-10-31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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