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10월 15일 14시46분
[생의 한가운데]명절이 지나고 나면, 남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이태 전에 사십여 년을 모시고 살던 어머님이 돌아가시니, 이젠 명절이라고 음식 장만하는 부산함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옆에서 배운 솜씨로 돼지고기 김치전, 명태전, 호박전을 새벽에 일어나 채반에 준비하고, 딸아이와 함께 전을 부치고 가족들이 모여 식사를 하니 하루가 금방이다.
둘째 날은 오롯이 혼자 서점 가서 책 사기, 카페에서 차 마시기, 긴팔 티셔츠 사기 등을 수행하였다.
그다음 날은 산소에 다녀오고, 여름옷 정리와 집 청소를 하느라 하루가 또 금방 지나갔다.
그래도 덜 아쉬웠던 것은 특별한 하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선시대 전라도의 수장이라도 된 듯, 춥지도 덥지도 않은 바람 속에서 전라감영 ‘선화당에 춤꽃이 피었습니다’ 공연을 관람하였다.
우리 지역 전통무용에 남자 무용수는 드물기에 그 존재만으로도 귀한데, 그중 한 분이 문정근 무용가이시다.
무형문화재 승무 이수자이자 전라삼현승무 보유자이며, 전라교방무의 뿌리를 찾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2시간여의 공연이었다.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도 분명 저 무용가들처럼 춤추는 사람이었을 거라 생각하며 큰 박수로 응원하였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이다.
사무실에 밀린 일과, 온라인으로 접수된 추석 연휴 기간 피해 소비자들의 문의에 답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결국 출근을 했다.
연휴임에도 휴대전화에는 다양한 도움 요청이 온다. 교회 분들도, 지인들도 피해 사례를 보내며 “보이스피싱 같다”며 급히 연락을 주었다.
그럴 때면 바로 전화를 걸어 사이버수사대 연결 방법을 안내한다.
당한 피해자의 다급함은 옆에서 보아도 피가 마를 듯하다.
경찰서에 민원 접수를 했다고 해서 곧바로 금전적 손실이 복구되는 것이 아니니, 그 급한 마음이 내게까지 전해져 가슴이 울렁거린다. 피해자는 오죽할까 생각하게 된다.
둘째 아이는 “일 좀 그만하라”고 지청구하지만, 연휴에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사이다를 마신 듯 상쾌하기까지 하니, 분명 일중독은 맞는 것 같다.
우리 단체는 올해도 추석 명절 소비자 피해 집중 창구를 10월 24일까지 운영한다.
통계를 보니 작년 추석에는 60여 건이 접수되었다.
특히 ‘티몬 사태’로 인해 항공권, 여행 관련 숙박, 택배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있었다.
모 씨는 추석용 과일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는데, 일부는 상하고 곰팡이까지 핀 상태라며 접수했다.
또 다른 소비자는 지인으로부터 쇠고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말을 듣고 택배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어 확인해보니 다른 곳으로 배달되어 택배사와 실랑이를 벌인 후 접수한 사례였다.
이렇듯 연휴가 끝나면 우리의 일은 시작된다.
화려한 선물 포장 뒤에는 피해가 숨어 있고, 신뢰가 무너진 거래가 존재한다.
상담을 하다 보면 ‘그래도 혹시 해결될까’ 하는 소비자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우리 직원들은 하나라도 더 도와드리려 귀를 기울인다. 사소해 보이는 사연일지라도,
그 안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믿음, 그리고 정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어르신 한 분은 어제도 “덕분에 일이 해결됐다”며 카페에서 직원 수만큼 커피값을 결제하고 고맙다며 가셨다.
그 순간, 우리는 다시금 ‘이 일이 왜 중요한가’를 깨닫는다.
소비자 피해는 돈 몇 푼의 문제가 아니다.
정직한 거래에 대한 믿음, 서로를 신뢰하는 사회의 기본이 무너질 때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우리 모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목소리를 모은다.
한 사람의 불편함이 해결될 때, 지역사회 전체의 신뢰가 조금 더 단단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명절이 지나면 상자 속 선물은 사라져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남는다.
우리의 역할은 그 마음이 상처받지 않도록, 소비자를 지켜주는 일이다.
소비자의 권리는 특별한 날에만 지켜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365일, 누구에게나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한다.
명절이 끝나고 남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결국 사람의 마음이라고.
/김보금(한국여성소비자연합 전북지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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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10-1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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