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9월 24일 11시14분
[금요수필]새 빛, 바램으로 물들이다
이종순
주홍빛이 강해질수록 사람들의 기다림의 숨소리는 조용한 떨림으로 새벽공기를 채워간다. 사람들은 새 빛이 시작되는 방향으로 두 손을 모은 체, 눈을 감고, 간절한 새벽의 기도는 바람에 흩어지는 속삭임처럼 우주 끝에 닿아 일렁인다.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평화롭게 이뤄진 이념을 달리한 정부가 유월을 기점(起點)으로 새롭게 시작되었지만, 그동안 세상을 살아온 만큼 알 것 같기도 한데, 나의 지혜와 살아온 경륜과는 멀어져 있지 않나 싶다. 늘 제자리에 와있는 것 같은 현실이다. 새벽은 이미 밝아 지고 있으나, 사람들은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소상공인은 아우성치며 무너져 가고, 중산층들의 가슴은 타들어 가는데 이런 아픔들은 어떻게 누가 다독여 줘야 하나? 하지만 우리는 꼭! 이겨내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라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단단하게 뭉쳐가는 국민성으로 할 수 있다는 새로운 물결의 역사를 만들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무서웠던 계엄령하에서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밤을 지새웠던 그들은 기상의 악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 젊은 대학생들, 그리고 5~60대 중년들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차가운 길바닥에 앉아 집회하는 애국심에 감동을 받아 마음이 벅차올랐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의 미안함이 앞서, 커피값을 선(先) 결재해서 마음을 전달하는 아름다운 격려가 따뜻하게 꽃피워지는 모습을 우리는 보았다. 서로에게 나누는 따뜻한 커피 한 잔과 음식들 그리고 담요 등의 물품은 매서운 날씨를 포근하게 녹이고도 남았다. 집회가 해산한 후에도 누구도 요청하지 않았건만 어지러워졌던 주위를 깔끔하게 정리하는 모습을 CNA의 외신기자와 지나던 외국인들이 카메라로 찍어 세계의 방송 매체마다 전송해서 실시간 뉴스로 내보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문득 과거를 돌아본다. 아프고 힘들었던 지난 80년의 계엄을 겪었던 한 사람으로서, 핏빛으로 물든 흑백사진의 기억을 불려오려고 하니, 두려움이 앞서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때를 더듬으며, 자작시(自作詩) 시조 한 수를 옮겨본다. *오월의 민중 물결 아픈 상처 다독이고 / 팔십 년 흑백사진 붉은색 핏빛이네/ 정의의 젊은 청춘아 민주화로 꽃 피우리*
시조 속에 숨어든 청년들의 절규가 아스라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수상 소감에서 “과거의 죽은 자가 미래의 산자를 도울 수 있다.”라는 감동의 메시지를 던졌다. 소감에 감동하면서 나도 모르게 감격의 눈시울이 젖는다.
21세기의 우리나라 발전 양상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36년 동안의 악독했던 식민지배와 오랜 시간의 모질고 세찬 눈보라를 몰고 왔던 군사독재를 겪으면서도 희망을 노래하던 젊은 함성이 조국의 미래를 핑크빛으로 물들게 해준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본다. 그 숱한 난관들을 이겨낸 강인한 민족성을 지닌 국민이었기에 보란 듯이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면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워 모두가 놀랍도록 눈부신 발전을 이뤄낸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흐른다. 희망을 노래하는 우리들의 우렁찬 함성이 또 다른 열망에 대한 속삭임, 다시 찾은 새 빛처럼, 바램의 기도가 미래의 꿈을 더 푸르게 물들어 주리라.
이종순 수필가는
'문예사조'로 수필 등단. 교육학박사.
전)호원대 유아교육과 겸임교수 & 우석대 대학원 유아교육 외래교수
교육부 유보통합 연구진으로 참여.
'창의 숲 연구소' 대표
지면 : 2025-09-26 10면
http://sjbnews.com/860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