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8월 17일 15시53분
[월요아침]석과불식(碩果不食)
“큰 씨 과일은 먹지 않고땅에 심어 새봄을 기다린다”
학교 다닐 때, 달리기를 하다가 넘어지면 옆에서 달리던 친구가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넘어진 친구를 도와주느라 입상을 못했어도 장한 학생이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칭찬해 주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한 발짝이라도 남보다 더 앞서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의든 타의든 때로 남을 밀치게 되고 쓰러져도 그를 일으켜 세우기보다 딛고 넘어서야 하는 시대가 됐다. 한마디로 약육강식의 시대인 것이다.
맹자가 가장 경계한 것이 “서로 이익을 챙기느라 싸우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사회는 맹자가 가장 혐오한 이익 중심의 경쟁사회가 됐다. 이순신 장군이 만약 지금 태어났다면 ‘백의종군’이 가능했겠는가? 그는 매사 양보하는 사람이었다. 예와 충과 의리를 목숨같이 숭상하던 시대에 그는 갖은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견뎌 냈다.
지난해 12.3일 불법 계엄으로 우리나라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 뻔했다. 6.9일 대통령 선거 전까지 6개월간 경제는 끝없이 추락했고 외교와 안보는 길을 잃었다. 그러나 세계사에 유례없는 빛의 혁명으로 어둠의 심연에서 국민이 길을 밝혔다. 다행히 불법 내란을 저지른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 됐고, 새 대통령으로 이재명이 당선됐다.
그러나 아직도 내란 세력의 준동은 계속되고 기득권 세력의 이권 카르텔이 철옹성처럼 높다. 앞으로 어떠한 상황과 역경이 닥쳐와도 불법 계엄을 막아낸 국민의 저력으로 빛의 혁명을 완성 시켜야 한다. 그리고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필두로 교육, 노동 등 개혁을 이뤄내야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이럴 때, 국민에게 ‘석과불식(碩果不食)’이 주는 교훈을 통해 절망에서 희망을 읽어내는 지혜를 찾아내야 한다. 석과불식은 사서삼경의 주역(역경)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석과불식 군자득여 소인박려(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에서 유래됐다. 풀이하자면 ‘큰 씨 과일은 먹지 않는다. 군자는 가마를 얻고, 소인은 거처를 빼앗긴다.’라고 풀이된다.
여기서 석과불식은 ‘과일의 씨를 받아 후손들의 식량으로 남겨놓아 복을 끼쳐야 한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참 농부는 아무리 배고파도 봄에 씨종자로 쓸 알곡을 먹지 않고 소중하게 지킨다. 그렇다, 씨 과일은 절대 먹지 않고 땅에 심어 새싹으로 키워내고 다시 나무로, 숲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옛말에 ‘농부아사 침궐종자(農夫餓死 枕厥種子)’라고 했다. ‘농부는 굶어 죽을지언정 씨종자는 먹지 않고 베고 죽는다’라는 뜻이다. 석과불식은 단지 한 알의 씨앗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이다. 즉, 현재의 공을 내가 다 취하지 않고 후세를 위해 남겨 두는 것이다.
옛날 농경사회에서 씨종자까지 먹어 치운다거나 팔아먹는 사람을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래서 생긴 상스러운 욕이 씨까지 팔아먹는다고 해서 ‘씨 팔△’, ‘씨 팔O’이란 욕이 나왔다. 씨 과일과 종자 돈을 없앴기에 가망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여 그런 욕을 얻어먹는 것이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기 위해서는 씨 과일과 종자 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 이를 함부로 먹어버리면 앞으로 희망이 없어지고 돈을 날렸으니 상스러운 욕을 먹어도 싸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큰 씨 과일은 절대 먹지 않았다. 석과불식은 동서고금의 수많은 언어 중에 가장 희망이 담겨있는 언어다.
흰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에 굶주리는 날짐승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걱정했던 우리 조상들의 착한 마음을 담긴 것이 까치밥이다. 석과불식은 고향집 앞마당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남겨 두었던 홍시다.
/이태현(고원공간정보 부회장/전 무주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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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8-18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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