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7월 21일 07시45분
일제는 미륵사지 석탑에 왜 시멘트를 부었나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로욜라국제대학 교수, 동양미술사학’ 제20호에서 ‘물질의 근대, 근대의 물질: 조선 불교미술의 시멘트 복원' 발표
1915년 조선총독부 주도로 마무리된 미륵사지 석탑 복원 공사는 탑신을 콘크리트로 메우고 외부에 시멘트와 인조석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04년 해체 복원 당시 벗겨낸 콘크리트는 무려 185톤에 달했다. 이는 복원 당시 얼마나 광범위하게 근대적 재료가 사용됐는지를 보여주는 물질적 증거다. 이 복원은 이후 한 세기 동안 ‘흉물’이라는 비판과 ‘근대적 응급조치’라는 평가를 오가며 논란의 대상이 됐다.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및 로욜라국제대학 교수는 동양미술사학’ 제20호에‘물질의 근대, 근대의 물질: 조선 불교미술의 시멘트 복원'에서 미륵사지 석탑 복원을 물질문화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는 시멘트를 단순한 건축 재료가 아니라, 근대성의 상징이자 제국 권력의 질서를 구현한 매체로 해석했다. 미륵사지 석탑 등의 문화유산 보수 재료로 콘크리트의 물성에 주목하여 당시 문화유산 복원이 지니는 근대적 성격을 조명했다.
지속 가능한 문화유산의 현상 유지, 대량생산을 통한 균일한 품질의 신재료 사용, 상대적으로 빠른 기간에 가능한 효율적인 공정이었다는 점에 일제강점기 시멘트를 통한 문화유산 보수의 근대성을 지적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일제강점기에 씌운 콘트리트 제거가 완료됐다. 공들여 벗겨낸 콘크리트의 양만 185톤에 달한다. 실로 막대한 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시멘트 를 부었을 당시에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을 것이다.
콘크리트를 덧씌운 미륵사지 석탑의 흉물스러운 모습은 석 탑 해체 직전까지 식민지의 비극으로, 제국 일본의 횡포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콘크리트 보수 이전의 사진을 보면 과연 미륵사지 석탑이 콘크리트 보수없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륵사지에 앞서 1907~1909년 서울 남대문을 보수할 때 처음 콘크리 트를 사용한 이래 유독 조선(1392~1910)에서의 석조ㆍ목조 문화유산 복원에 콘크리트가 많이 사용됐다.
이 글은 미륵사지 석탑 등의 문화 유산 보수 재료로서 콘크리트의 물성에 주목하여 당시 문화유산 복원이 지니 는 근대적 성격을 조명했다. 전근대에는 쓰이지 않았던 시멘트라는 새로운 재료의 도입과 이를 이용한 문화유산 보수와 복원을 물질문화 연구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의 일환이다.
원래 콘크리트는 시멘트에 모래, 자갈을 섞어 걸죽한 반죽 형태로 만든 것을 통칭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물질 자체의 물성에 주목한 것이므로 시멘트다. 1920~1930년대 사이에 새로 도입된 건축 물질인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 구조 건축에 대한 지식이 일본 건축계에 본격적으로 전해진다.
일본에서는 이를 ‘새로운 기술의 파도’라 규정하고, 1920년에 분리파 건축회가 발족하면 서 비로소 본격적인 근대주의 건축이 시작된다. 기술 역시 새로운 물질과 함께 전해지고 숙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정착된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철근 콘크리트와 철골조 건축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일본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지진 때문이었다. 여전히 목조건축이 주류였던 일본에서는 벽돌과 돌이 서양 건축의 재료라고 생각해 벽돌과 돌로 서양식 건축을 했다.
벽돌 건축물도 지진에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으로 벽돌 건축물이 대거 붕괴되고 인명피해가 커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재료로 철골과 철근 콘크리트에 주목하고 철골 건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639년에 건립된 미륵사지 석 탑은 17세기경에 상당 부분 무너져 있었고, 보수나 중수 관련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719년 미륵사에 벼락이 떨어졌다는 기록이 나오고,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의 양곡집(陽谷集), 익산군수 남태보(南泰普, ?~?)가 편찬한 읍지 금마지(金馬志)(1756년)에 허물어진 미륵사 탑 기록이 약간 나올 뿐 이다. 그외에는 1738년 석탑을 찾은 선비 강후진(康侯晉, 1685～1756)의 와유록(臥遊錄) '유금마성기(遊金馬城記)'에 “허물어진 7층 탑 서쪽으로 농부 셋이 올라가 농기구를 끼고 누웠다”는 기록이 확인되는 정도이다.
1902년부터 능묘, 향교, 사원 등 조선 전역의 유적을 조사했던 세키노 다 다시는 1910년 구리야마 슌이치(栗山俊一, 1882~ ?)와 함께 익산에 갔다. 당시 조사보고서인 '메이지43년도 조선유적조사약보고(明治四三年度朝鮮遺 蹟調査略報告)의 '참고의견[副申]'에 구리야마는 익산 폐미륵사 석탑: 양식으로 판단하건데 약 1,200여 년 전에 건립되어 규모가 장대하고 지금 조선에 있는 석탑 중에서 이에 비견할만한 것이 없으며, 형태 역시 지극히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 크게 파괴, 붕락(崩落)되어 간신히 존재하는 6층의 탑신이 위태로워 실로 위험한 상황에 가까워져 있다. 수리비가 약 5만원, 응급수리 비가 약 2,000원이다'고 썼다.
이 응급수리비로 미륵사지 석탑 보존공사를 실시했다. 이들은 다 허물어져 가는 미륵사지 석탑에 세키노의 조선유적분류안 가운데 ‘갑(甲)’ 등급을 부여했다. 갑이라는 최고 등급을 부여한 것은 당시 일본 학자들이 고전(古典)‧고대(古代)를 우선시한 태도와 일치한다.
석탑과 석축을 정비하는 보수공사는 5년 만인 1915년 12월 완공됐다. 응급 보수에 1,870원, 목책 및 환경 정비에 375원이 들었다.
석재가 벌어진 틈에는 콘크리트를 주입하고 모르타르칠을 했으며, 간주석을 추가로 설치하고, 인조석으로 옥개석 마감을 하는 수리를 하며 4매의 실측도와 2매의 공사 설계도를 남겼다.
실측도에는 석재들이 기울거나 풍화된 부분, 석재에 금이 간 모습들을 낱개마다 정교 하게 그렸다. 설계도에 따르면 탑 동 편 석재 중 132개, 북편 석재 중 95개 를 교체하거나 수리해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부재를 낱개 별로 주문했고 석탑 전체 층을 모르타르 칠로 마감하게 했다.
이 수리는 석탑의 붕괴 를 막기 위한 응급 보수라고 했다. 석탑의 서측면과 남측면, 북측면에 콘크 리트를 타설하고 틈이 벌어진 곳이나 결실된 부분도 콘크리트로 충전했다.
콘크리트는 당시 새로 도입된 신소재 였던 포틀랜드 시멘트, 잡석, 모래, 약간의 석재, 혼화제 등을 배합한 것이 었다.
미륵사지 석탑과 비슷한 시기에 보수된 분황사 모전석탑도 총독부는 1913년 실측도를 만들고, 1915년 10 월~12월까지 약 2개월에 걸쳐 보수공사를 했다. 미륵사지 석탑처 럼 무너진 탑의 추가 붕괴를 막기 위 해 지지대를 설치하고 탑신 아래 콘 크리트를 부어 지반을 보강하는 공사를 했다. 이때 쓰인 시멘트도 일본에서 수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분황사 모전석탑 수리공사 예산내역서에 의하면 분황사 모전석탑을 보수하는데 들어간 예산이 1,850원이었고, 이 중 시멘트 값이 647.5원이었다.
강교수는 복원을 단순한 기술적 개입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해석이 개입된 문화적 실천으로 본다. 시멘트가 지닌 표준화, 효율, 통제 가능성 등 물질적 성격은 제국의 통치 논리와 맞물리며, 문화유산을 식민지 근대의 시각적 질서 안에 재배치하는 도구가 됐다.
조선에서의 시멘트 복원은 제국이 기술적 우월성과 근대성을 시현하고자 한 방식이자, 기억을 통제하고 구조화하려는 시도였다. 1919년 평안남도엔 조선시멘트주식회사가 설립되며 대규모 생산 체계를 통해 도로, 공장뿐 아니라 유적 복원에도 시멘트가 본격적으로 활용됐다.
이는 조선을 기술적 통치 아래 두고, ‘근대적 객체’로 재현하려는 식민지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시멘트는 모방 가능한 근대의 상징이자, 식민지의 문화유산을 제국의 시선으로 다시 쓰는 물질적 언어였다.
강교수는 이러한 복원의 양상이 단순한 폭력의 결과로만 환원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시멘트 복원이 근대 기술의 진보성과 효율성뿐 아니라, 그 이면에 작동하는 통제와 권력이 교차하는 장면이었다고 강조한다. 복원은 외형을 보존하는 동시에, 그 유산이 어떻게 기억되고 소비될지를 규정하는 행위였다.
이는 일종의 ‘기억의 구조화’이자, 복원이 근대와 권력이 맞물리는 ‘균열의 현장’이었음을 보여준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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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7-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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