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07월 13일 15시55분
[온누리]팍스 아메리카나
로마는 일정 영토를 확보한 후 더 이상 침략전쟁을 벌이지 않았다. 다른 나라들의 분쟁도 용납하지 않아 이를 어기면 응징했다. 축적된 부와 각국의 우수한 문화를 흡수해 평화는 물론 번영을 구가한 로마의 황금기가 바로 팍스 로마나이다.
역사상 가장 긴 평화의 시대로도 평가된다.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즉위한 후부터 서기 180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사망할 때까지 200년 동안 이어졌다. 로마의 지배가 장기적이었고, 절대적이었다는 뜻이다. 로마의 상징인 독수리를 유럽 국가들은 물론 미국까지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 그늘은 지금도 짙다.
서기 55년 세네카가 처음 사용한 팍스 로마나는 이후 역사학자들에 의해 ‘팍스’를 붙여 응용됐다. 한 국가의 힘으로 가져온 평화와 번영을 이른 것이다. 최초는 ‘팍스 바빌로니카’이다. 신바빌로니아가 메소포타미아 지역 나라들을 주도했던 시대를 그렇게 불렀다. 이후 ‘팍스 페르시아나’는 세계 최강의 이란계 국가를, ‘팍스 시니카’는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중국을 이른다.
근대에 와서 세계무대를 주름잡았던 영국을 ‘팍스 브리타니카’, 러시아의 의한 평화를 ‘팍스 루시카’라고 한다. 경제적으로도 활용됐다. 일본을 일컬어 ‘팍스 아포니카’라고 불렀다. 한때 도쿄를 팔면 미국 전 국토를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었고, 실제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은 미국의 마천루를 대량 구입하면서 생겨났다.
현재는 누가 뭐래도 ‘팍스 아메리카나’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전쟁을 중재하면서 나타난 위력만 봐도 그렇다. 절정은 소련의 붕괴 후인 1990년대였다. 러시아의 전통적 우방국인 세르비아를 국제법 절차 없이 미국이 폭격했지만, 러시아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혹자들은 9‧11테러부터라고 한다. 러시아는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를 침략했다. 그런가 하면 ‘팍스 시니카’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의 굴기도 무섭다. 관세전쟁에도 굽히지 않는 중국 자세에 오히려 트럼프가 나서서 달래는 모습이다.
미국의 위상을 더 악화시킨 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내건 트럼프의 고립주의이다. 미국은 ‘팍스’의 주도권을 잃어가고 있다. 그 사이 브릭스의 반격이 만만치 않다. 이미 세계 경제의 27%를 차치할 정도로 성장한 중국과 러시아, 인도 등 신흥 강국이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계기로 ‘반미(反美)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는 미국과 트럼프의 성토장이었다. 단일 국가가 아니라는 한계는 있지만, 브릭스의 경쟁력은 점점 커가고 있다. 이미 구매력에서 G7의 앞질렀다는 평가다. 자국만을 위하면 제국의 자격은 없다. 그런가 하면 영원한 제국도 없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하다.
/김판용(시인‧전북대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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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7-1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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