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7월 03일 14시07분
[금요수필]참궁로를 걸으며
윤철
나는 다가산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 찾는다. 마을 뒷동산처럼 작고 소박한 이 산은 ‘산’이라는 이름이 다소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겸손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소박함 속에 깊은 울림이 있다. 마음이 심란할 때 그 산길을 걷다 보면, 꼭 수세미 속처럼 엉킨 생각들이 하나하나 풀리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다가산은 내 마음을 다독여주는 특별한 장소가 되어있다. 산 초입, 취양정 활터를 곁에 끼고 산자락을 휘감는 길이 있다. 등산로라고 하기엔 어울리지 않게 넓은 길. 무심코 지나쳐도 좋을 법한 평범한 도로지만, 이 길 위에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민족의 아픈 역사가 피처럼 배어 있다.
1933년, 일제는 전주의 푸른 숨결 같던 다가산을 깊이 베어냈다. 뾰족해야 할 정상은 평평하게 깎여서 광장이 되었고 그 광장 서편에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 같은 일본의 신을 모시는 신사(神社)가 세워졌다. 그리고 고관들이 도청(지금의 전라감영 자리)에서부터 자동차를 타고 올라와 참배할 수 있도록 오밀조밀한 산허리를 생선 배를 가르듯 갈라 신작로를 만들었다. 그리고 참궁로(參宮路)라고 이름 붙였다. 하지만, 이 길은 단지 신사 참배의 편의를 위한 길만은 아니었다. 풍수상 전주의 혈처(穴處)로 여겨지던 다가산 정상을 깎고, 그 위에 도로를 낸 것은 단지 땅의 형상을 훼손한 것이 아니라, 전주의 맥을 끊고 전라도 사람들의 정신을 꺾기 위한 의도된 폭력이었다. 동학의 기운이 살아 숨 쉬던 저항의 뿌리, 그 깊은 힘을 지닌 곳을 일부러 허물었던 것이다.
민족 말살과 강압적 동화 정책의 하나로 조선 사람들에게도 참배를 강요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참배를 거부할 경우 돌아올 불이익이 두려워 억지로 그 길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이 길엔 지금도 억눌림과 굴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듯하다. 세월이 흘러 광복을 맞았고 신사는 철거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신사가 있던 그 자리에 6·25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호국영령탑이 세워졌다. 2003년엔 국가 현충 시설로 지정되어 지금까지도 그 정신을 지키고 있다. 과거 억압의 상징이 있었던 자리에, 이제는 자유와 희생의 정신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어른들은 “다가산은 신령이 머무는 산”이라 하셨다. 무서운 곳이니 가지 말라는 뜻이었을 테지만, 그 말이 어쩐지 가슴에 와닿는다. 일본의 신을 모셨던 어두운 시절도, 나라를 지켜낸 넋이 머무는 오늘도, 다가산은 그렇게 역사와 영혼을 품은 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참궁로를 따라 걷다 보면, 문득 떠나지 못한 혼들이 길목마다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시대를 넘어 흐르는 피눈물과 탄식, 적막 속에 켜켜이 쌓인 감정들이 다가산에 스며 있는 듯하다. 그 안에 흐르는 침묵이 곧 역사이고, 다가산의 그늘마다 배어 있는 슬픔이 우리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이 산에 오르면 언제나 마음이 경건해진다. 바람이 불어도, 그늘이 져도, 어딘가 모르게 숙연해진다. 수세미 속처럼 헝클어진 마음이 쉽게 가지런해지는 것도, 아마 그런 기운 때문이리라.
윤철 수필가는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수상 : 전북수필문학상, 새전북신문문학상, 리더스에세이문학상 등
수필집 :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 '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
(현) 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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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7-0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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