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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6월 25일 16시22분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위한 우직한 발걸음

김응혁 시집 ‘씨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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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곰멀 탐정재 옛 찰방터에 오르면/멀리 모악산 자락이/아스라이 다가선다//해전, 어전, 후청, 삼례, 신금, 석전, 하리/와리, 수계, 신탁의 그리운/마을 이름을 부르면/복강아지도 우르르 뛰쳐나왔던/단내의 삼례 땅//후상, 남인멀, 학동, 조셋, 여시코빼기, 옷나무골, 금반지/깡쇠가 끼룩끼룩 노루뜀을 뛰었던/삼례벌//벼 이상 주렁주렁 여물 때면/하늘도/씽긋 웃는다//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을 지폈던/신원伸寃의 삼례취회지參禮聚會址/자유와 민주와 민족을 위해 궐기를 하였던/농민들의 염원이 서린 곳//이리 가면 익산, 저리 가면 전주/그리 가면 금마, 고리 가면 고산/사통오달의 삼례, 딸기가 탱탱 익는/삼례로, 삼례로 사뿐사뿐 모인다//)‘사뿐사뿐 삼례여’ 전문)‘

김응혁시인의 ’씨눈(신아출판사)‘은 지역을 향한 애정과 고향에 서린 아름다운 추억, 고향 땅에서 벌어진 역사적 비극의 현장에서 찾아낸 선조들의 흔적을 노래한다. 가문의 역사를 넘어 민족의 애환까지 담아내는 이 시집은 깊은 감동을 준다.

그의 시에는 삶과 문학의 ‘시원(始原)’에 관한 내용이 자주 등장한다.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찾기 위한 우직한 발걸음을 통해 시인은 생의 근원을 파악하게 되고, 역사와 현실의 이면을 엿보게 되며, 나아가 시의 길까지 보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일이 역사와 현실, 문학의 길과 맥이 닿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향토적이고 친근한 언어로 깊은 서정을 담아낸 서정시인이다. 다른 시인들과 차별되는 점은 그의 행보가 승자의 시선보단 ‘역사적 비극’을 경험한, 권력 없고 힘없는 패배자의 시선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시조(始祖)이기도 한, 신라에서 고려로 국운이 넘어가는 상황 속에서도 개골산에 들어가 끝까지 신라의 자부심과 긍지를 지키려 한 ‘마의태자’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우울하거나 비관적이지 않은 것은 그의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그의 시세계는 역사적 비극과 현실적 고통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과 자연의 섭리에 바탕을 둔 낙천성의 융화라 할 수 있다.

김현정 문학평론가는 “철새의 본능은 비상이다. 그리하여 한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나그네 새’인 철새는 마치 오랜 기간 연습이라도 한 것처럼 질서정연하게 군무를 보여준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장관의 모습이다. 시인은 해가 질 무렵 망망한 갯벌 위를 떼 지어 날아오르는 철새들이 비상하는 모습, 군무를 통해 ‘비상’을 꿈꾼다. “이 세상을 아름답게 물들이며/새날을 밝게 하기 위하여 해가 지고 있다”라고 한 데서 여명을 내장한, 희망적인 일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그가 끊임없이 비상할 수 있었던, 시의 길이자 시인의 길이었던 것“이다고 했다.

시집은 1부 여명, 2부 마의의 고혼, 3부 한길 50년의 멍에, 4부 별빛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5부는 모두 5편의 시평과 후기를 담았다.

시인은 “인적이 끊긴 세상은 너무 외롭고 허전하다. 후대가 살아야할 이 땅이 더 그럴 것 같다. 청개구리가 사라진 곳에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가 퍼지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풍성한 내일을 소망해 본다”면서 “그동안 살아온 삶을 역정삼아 조심스럽게 화보와 시평과 옛 제자들 졸업 50주년의 글과 ‘한국성씨문화’의 ‘여기 이 사람’ 등을 함께 엮는다. 만경강 하류로 부끄럽게 빠지는 저녁 햇살이 아련한 여운으로 흐득거리는 것만 같다”고 했다.

시인은 1936년 완주 삼례에서 출생, 전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당시 신영토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대학원 재학 중 완주 삼례 하리 초포고등공민학교를 인수, 석전고등공민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고 지역사회에 봉사했다. 이후 전주 신동아학원, 익산 남성학원 등에서 후학을 지도했으며, 통천김씨대종회 회장으로 헌신하며 유적을 복원하고 씨족사를 정리했다.

산문집 ‘저 아침의 소리는’을 발간한 뒤 2003년에 늦깎이로 ‘문예활동’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인은 시집 4권과 산문집 1권, 시문선 1권 등을 펴낸 지역 원로문인이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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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6-2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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