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전주 미술을 알리다
아트그룹 '아띠', 파리의 갤러리 아네스 노르서 ‘2025 한-프랑스 국제교류전’
아트그룹 '아띠'가 지난해에 이어 다시 한 번 프랑스의 문을 두드렸다.
24일부터 29일까지 파리의 갤러리 아네스 노르(Galerie Agnes Nord, 11 Rue Guenegaud 75006 Paris)에서 열리고 있는 ‘2025 한-프랑스 국제교류전’에서다. 주제는 ‘두 개의 지금’이다.
전주와 파리, 각기 다른 도시에서 치열하게 예술가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예술의 발원지 파리에 모여, 각자의 문화적 기반 속에서 고유한 예술 세계를 탐색했다. 이들은 자기 정체성의 경계를 낮추고 서로를 인정하며,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관계성을 통해 성숙한 국제 교류의 태도를 보여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친한 친구나 오랜 친구를 뜻하는 '아띠'는 미술인들이 자신의 재능을 전시를 통해 사회에 환원하고자 2007년 설립된 모임이다. 교동미술관을 통해 운영된 초대기획전, 레지던스프로그램, 젊은 미술전 선정 작가를 거쳐간 미술인들의 뜻이 모여 결성됐다.
그만큼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로 구성됐으며, 폭넓은 예술 활동을 통해 예술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예술을 통한 교류를 목적으로 매년 다양한 전시와 교류행사를 기획하고 있으며, 지난 2018년부터는 일본 고베전을 시작으로 독일 베를린, 대만 가오슝, 프랑스 파리까지 국제교류전을 꾸준히 이어오면서 국내외 작가들과 적극적인 소통에도 나서고 있다.
한국에서는 강정이, 강현덕, 김미라, 김선애, 김완순, 문리, 소찬섭, 이보영, 정소라, 황유진 작가가 작품을 출품했다.
프랑스에서는 문민순, 막스 고메스(Max Gomes), 아니타 융(Anita Ljung), 아네스 베이앙(Agnés Veilhan) 작가가 함께했다.
현대 도예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강정이 작가는 절제와 함축을 통해 내면의 열망을 담아낸다. 그의 작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원형의 형태는 유년 시절, 비눗방울을 가지고 놀던 기억과 경험을 시각화한 것으로 순수했던 시간에 대한 감성적 회고를 담고 있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사회인으로서의 여성’을 주제로 개념 미술 작업을 이어온 강현덕 작가는 여성, 환경, 공동체에 대한 관심을 시각 언어로 풀어낸다. 그는 드로잉된 대상을 오려내고 버리는 방식으로 여백을 강조하고, 그 여백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자연과 일상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따뜻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김미라 작가는, 머무를 수 없는 시간의 아름다움을 고유한 풍경 속에 표현한다. 물감을 반복해 덧대고 쌓아 올리는 섬세한 작업 방식은 삶 속에서 축적되는 경험의 층위를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삶과 기억, 전통의 정서를 금속이라는 재료에 담아내는 김선애 작가는 나비의 생애 주기, 작은 알에서부터 시작되는 변태 과정을 통해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녀의 작업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우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텍스타일, 가죽, 한지 등 다양한 공예 재료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해 온 김완순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프랑스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전주 부채 위에 봉숭아와 모란을 그려 넣은 민화 작품은 부귀영화와 풍요를 상징하는 전통적 의미와 더불어, 그 화려한 색채와 자태로 프랑스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소찬섭 작가의 ‘인연’은 목판 위에 흑연을 겹겹이 쌓아 올려 표현한 작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철학적 태도를 담고 있다. 흑연의 농담과 질감을 조절하며, 자연 앞에 선 인간 존재의 통제할 수 없는 상태를 드러내고, 조형성과 명상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생의 다양한 정서를 반영한다.
문리 작가는 광목 천 위에 힘 있게 휘둘러진 먹획을 ‘물꽃’이라 명명했다. 이는 자연을 향한 겸허한 응답이자, 형상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존재의 흔적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관람객이 자아를 성찰할 수 있는 여백의 시간을 선사한다.
이보영 작가는 일상의 공간에서 채집한 이미지를 서정적이고 친근한 배열로 재구성하여 낯설고도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집요한 손길로 완성된 치밀한 묘사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간직해 온 이상향과 경이로운 세계를 떠올리게 한다.
정소라 작가와 황유진 작가는 지난 2020년부터 ‘창의적인 나이듦’을 주제로 김제시 광활면 마을의 노인 공동체와 함께 진행한 예술로 실천한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영상과 사진을 통해 선보였다.
시골에서 평생 농사에만 전념하고 미디어와는 거리가 멀었던 할머니들이 점차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은 매우 인상 깊었다. 이러한 모습은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류 보편의 가치와도 맞닿아 흥미롭게 전달됐다.
2002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작업해 온 조형예술가 문민순은 흙과 연기 소성을 통해 완성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겉도는 대신 그 사회에 스며들고 싶었고, 아름다움을 지니고자 했던 그의 마음은 작업 과정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작업은 기도이자 명상이며, 자유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브라질의 해’를 맞아 다양한 이벤트가 펼쳐지고 있는 프랑스 현지 분위기와 어울리는 작가들도 초대되었다. 브라질 출신의 막스 고메스는 프랑스 예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에콜 데 보자르’의 아카데미 카탈로그를 재료로 활용해, 좋은 기억과 예술가로서의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브라질에서 오랜 기간 작업해 온 아니타 융은 브라질 원주민을 모티브로 한 판화 작품을 선보이며 관객의 시선을 끌었다.
28년간 물의 움직임을 예술적으로 탐구한 아녜스 베이앙은 니스 항구를 담아낸 아날로그 사진으로 깊은 감성을 나누었다.
아녜스 베이앙 작가는 “이번 교류전은 아주 좋았고,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문리 작가가 디스플레이를 너무 멋지게 진두지휘해 완벽한 전시가 되었다”면서 “이번 전시가 끝나면 이후 한국에서도 생애 처음으로 제 작품을 선보이게 될 텐데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소찬섭 대표는 “예술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교류전을 이어갈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한국 현대미술 작가의 작업에 대한 국제미술계의 큰 관심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고, 이번 국제전을 계기로 각자의 예술영역을 더 넓혀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파리전은 7월 15일부터 7월 27일까지 전주 교동미술관 본관 2전시실에서 바통을 넘겨 받아 한국전으로 국제교류를 이어간다.
김완순 교동미술관 관장은 “이번 전시를 통해 국제적인 교류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속 가능한 발전적인 창구 역할을 해나가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5-06-26 10면
http://sjbnews.com/8534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