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6월 18일 14시01분
[오늘의 길목]그대, 진정 혁신을 원하시는가?
매번 혁신을 주창하지만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체감하기 어렵다. 나는 그 이유가 리더가 아무리 혁신을 요구해도 일선의 담당자들이 혁신에 동참하는 데에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제반 환경 탓이라고 생각한다.
리더는 임기를 마치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아있는 직원들은 자칫 적극적으로 혁신에 동참해서 무언가를 변화시켰을 때 뒷감당이 힘들다. 그동안 우리는 중앙정부던 지방정부던 정권이 바뀌고 난 다음 대대적인 표적 감사에 이은 고발 등으로 많은 직원들이 겪었던 고통을 지켜보아 왔다. 선배들의 이런 경험을 지켜본 후배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정권은 유한하지만 내 직장은 더 오래 보존해야 하니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나를 지키기 위한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혁신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 혁신이란 기존에 해오던 일 중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만 걸어가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이나 공공기관을 상대해 본 사람들이면 쉽게 알 수 있다. 예전에 비해서 담당자들이 더 많은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요구하는 서류를 자세히 살펴보면 법적으로 꼭 있어야 하는 서류 외에 대체 이러한 서류를 왜 요구할까 싶은 것들도 꽤 많이 끼어있다. 그 서류들은 결국 몸보신용(?)일 가능성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측의 담당자들은 모두 사무실에서 문서작성과 수정, 검토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다. 그러니 현장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린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시간예술과 같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일어나는 일은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지 않은 사람은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판단할 수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서류이다. 그 시간 그 장소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서류로만 모든 상황을 진단하고 판단하니 현장보다는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가 훨씬 중요하다.
여름철이면 물난리가 예상된다. 물난리를 예방하려면 위험이 예상되는 현장을 열심히 둘러보고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현장을 열심히 둘러보아도 방문일지 등 문서로 남지 않으면 내 활동을 인정받고 보호받을 수 없다.
관이나 공공기관들은 지원사업을 많이 한다. 자신이 기획하고 지원한 사업이 자신의 생각만큼의 성과나 효과가 있는지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해당 사업이 추진되는 그 시간에 그 현장에 반드시 가봐야 한다. 그러나 현장에 가볼 시간이 없다. 지원의 성과나 결과는 사업 대행기관의 결과보고서를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담당자에게 중요한 것은 현장이 아니고 얼마나 결과보고서를 멋들어지게 만들어 올 수 있느냐이다. 후에 혹 누군가 이 사업을 문제 삼더라도 어차피 서류에 근거해서 잘잘못을 가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면 실무자나 담당자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다. 이들이 왜 문서나 서류에만 몰입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리더가 직원들에게 혁신을 요구하려면 이에 따르는 직원들이 혁신의 과정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확실한 조건을 먼저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혁신은 파괴를 통한 재창조 과정이다. 파괴하는 과정은 담당자 입장에서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다. 그동안 모두가 안심되는 길이라고 검증한 안전한 길을 스스로 파괴하고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아 결과를 알 수 없는 불안전한 길, 자칫 기대와 달리 실패할지도 모르는 길을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보통의 용기로 가능한 일이겠는가. ‘혁신’. 말은 쉽지만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그 용기는 격려하는 차원을 넘어 보호한다는 사회적 약속이 필요하다.
/문윤걸(예원예술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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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6-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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