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원동에 자리한 군산 명성사진관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에는 군산의료원과 월명공원 등 군산의 구석구석이 빠짐없이 등장했고, 흥행 대박을 맞은 ‘변호인’, ‘신세계’ 등의 영화도 군산을 담았다. 이들 영화보다 훨씬 앞선 1998년 작 ‘8월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한 ‘초원사진관’은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영화속 모습 그대로다.
보고서 ‘한국의 사진관(지은이 노영미, 박수환, 유동화, 유은정, 이재각, 조성실, 펴낸 곳 국립민속박물관)’ 은 19세기부터 20세기에 걸친 우리나라 사진관의 역사와 전국 각지의 사진관을 직접 현지 조사하여 작성한 생생한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 조사한 사진관은 서울 수도사진관, 경기 김포 세종스튜디오, 강원 횡성 백우사진관, 충남 보령 현대사진관, 광주 영상칼라현상소, 전북 군산 명성사진관, 부산 백조사진관, 경북 경산 영미사진관, 경남 창원 중앙 사진관으로 모두 9곳이다.
명성사진관은 군산시 미원동 도로변에 자리한, 오래된 사진관이다. 1974년 사진사 최형순은 미원동 294번지(현 군산시 미원로 110)에서 처음 사진관을 열었다. 그 당시 미원동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산업 지대와 인접해 있어 골목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쳤다. 1975년 명성사진관은 바로 옆 건물로 자리를 옮겼고 3년 후 다시 한번 이사하여 지금의 미원동 200번지(미원로 122)에 자리 잡았다. 그 이후로 46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명성사진관은 영업을 이어왔다.
최형순에게 미원동은 단순히 생업을 위한 공간만이 아니었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그는 청소년기 군산으로 이주하여 삶의 대부분을 이곳, 군산에서 보냈다. 미원동은 일제강점기엔 일본식 이름인 미원정(米原町)으로 불렸고 그 시절 일본인의 생활권에 있는 거리였다. 당시 군산에는 시내 곳곳에 일본 상점들이 즐비했고 그들 중에는 사진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시기 사진관은 군산의 삶을 기록하며 때로는 억압의 현실을, 때론 순간의 행복을 담아내던 장소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군산의 사진관 기록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극히 일부 사진관의 이름과 위치가 신문 한 귀퉁이에 짧게 등장할 뿐이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64년 최형순은 군산으로 이주해 왔고 그로부터 10년 뒤 명성사진관을 개업했다. 공장 지대와 인접했던 미원동 도로변의 사진관은 여공들의 발길을 끌어당겼다. 최형순은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한 장의 사진이 그들의 행복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사진 촬영은 단순한 이미지 생산을 넘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기록 행위이자 그 시절 여공들이 누릴 수 있었던 작은 사치와 즐거운 여가였다.
그 무렵 미원동 일대는 ‘경성고무공업사’를 비롯한 여러 공장으로 가득했다. 기계 소음과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어우러져 동네에는 삶의 활기가 느껴졌다. 인구가 늘자 자연히 학생 수도 증가했다. 미원동 인근에는 군산의 명문 학교가 여럿 있었는데 그 학교의 학생들이 증명사진을 찍으 러 명성사진관을 자주 찾았다. 그들의 순수한 미소와 청춘의 열정이 최형순의 렌즈를 통해 기록됐다. 그의 사진관은 아이들의 성장과 변화를 담아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명성사진관을 비롯, 당시 생겨난 많은 사진관으로 인해 군산의 사진 소비 문화가 새롭게 만들어졌고 그 속에서 최형순의 사진관은 삶의 중요한 기억을 간직하게 해주는 공간으로서 자리매김해 나갔다.
이에 앞서 그가 찾아간 곳은 군산 중앙로에 있던 ‘서울사진관’이었다. 그곳은 시내 한가운데 제법 큰 규모의 사진관이었는데 신칠현 사진사가 이끌고 있었다. 서울사진관 대표 신칠현은 1926년 결성된 ‘경성사진사협회’ 창립 회원으로서 오랫동안 사진계에서 깊은 경험과 지식을 쌓아온 인물이었다. 최형순은 처음 서울사진관 정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그 안의 독특한 냄새
와 분위기에 매료됐다. 다양한 촬영 도구와 액자에 담긴 사진들이 진열된 공간에서 그는 신칠현의 조수로서 사진의 세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는 사진의 언어를 이해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전문 사진사로 성장해 나갔다. 서울사진관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평생의 업을 마련하는 발판이 되어 주었고, 그는 수 많은 군산 시민의 생애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됐다. 세월이 흘러 최형순은 드디어 자신의 사진관을 열게 되었다.
그가 들려준 사진관 이야기는 1960년대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군산 근현대 시기 사진관에 대한 기록을 찾기 힘든 상황에서 그와의 면담 기록은 군산 지역 사진관사(史)를 재구성할 중요한 단서가 될 터이다. 1964년 군산에 정착하기 전 최형순 사진사는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금암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당시의 금암리는 평범한 시골 마을이었다. 최형순의 부친은 그의 가족을 따스하게 살피는 좋은 아버지였다. 훗날 그가 사진관 개업을 할 때도 아버지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전쟁과 고난 속에서도 서로를 지탱하며 이어져 왔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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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5-2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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