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생명을 나누는 선택, 골수 기증
자주는 아니지만 헌혈을 종종 실천해왔다.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데 작게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 헌혈센터에서 조혈모세포(골수) 기증 등록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조직이 일치하는 환자에게 조혈모세포를 기증하면 백혈병이나 혈액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새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말에 주저 없이 등록했다.
몇 년 뒤, 조직이 일치한 환자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적 같은 확률 속에 누군가와 연결되었다는 사실은 놀랍고도 벅찼다. 생명을 나눌 기회가 왔다는 설렘과 함께 ‘갑작스럽게 직장은 어떻게 해야 하지? 그리고 혹시 모르니 가족들에게 연락을 미리 하고 가야 하나?’라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환자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며 골수이식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골수 기증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골수 기증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받았다. 환자가 괜찮을지에 대한 걱정과 함께 허망한 마음이었지만 그 일련의 과정은 삶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사람들이 골수 기증을 어렵고 위험하다고 오해하지만, 조혈모세포 기증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전체의 약 80%는 헌혈과 유사한 방식인 ‘말초혈조혈모세포 채취’로 진행되며, 전신마취와 입원이 필요한 ‘골수 채취’는 일부에만 해당된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증할 수 있고, 대부분 1주일 이내에 회복된다.
우리나라의 조혈모세포 기증 등록자는 2024년 기준 약 39만 명에 불과하다. 미국(1,000만 명 이상), 독일(900만 명 이상) 등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치다. 형제자매 간 조직적합성(HLA) 일치 확률도 25%에 불과하고, 타인과의 일치 확률은 극히 적은 수준이다. 단 한 명의 등록이 환자에게는 단 하나의 희망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기증 등록률이 낮은 이유는 기증 과정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부정확한 정보, 그리고 사회적 관심 부족 때문입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척추에 바늘을 찌른다’는 식의 잘못된 인식 속에 기피하거나, 생업에 지장을 줄까 걱정해 참여를 망설인다. 그러나 정확한 정보만 알면 그 두려움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조혈모세포 기증은 누군가에게 단 하나뿐인 기적이자, 새로운 삶을 여는 문이 될 수 있다. 망설임 대신 용기로, 무관심 대신 참여로 연결된다면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작은 결심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바꿀 수 있다.
골수 기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한 희망의 연결이 다시 찾아오길 기다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나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이명인(원광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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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5-0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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