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4월 28일 16시00분
[경제와 미래]정치 문명국! 대한민국!
5세기 아테네는 세계 최초의 민주정을 구현했다. 민회(Ekklesia)는 모든 시민이 입법에 참여하는 공간이었고, 중요한 공직은 추첨제로 임명되어 권력의 세습이나 독점을 차단했다. 특히 시민 배심원제가 발달하여 사법권조차 시민에 의해 행사되었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 민주정의 수호자로 평가되지만, 그는 자신이 절대 권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종합하고 제도를 안정화하는 데 힘썼다. 아테네 민주정은 불완전했고 여성, 노예, 외국인을 배제했지만, ‘시민 주체의 정치’라는 이상을 실천한 역사적 출발점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국민의회가 1789년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을 채택한다. “주권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있다. 어떠한 개인이나 집단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위임받지 않는 한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제3조) 이 선언은 공공권력이 시민의 합의에 기초해야 한다는 ‘헌정주의적 시민 국가’의 원리를 명문화했다. 사이먼 섀머(Simon Schama)는 『시민들: 프랑스 혁명의 연대기』(Citizens, 1989)에서 이를 “구성적 권력(constituent power)이 깨어난 순간”으로 해석하고 있다.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의 불복종』(Civil Disobedience, 1849)의 철학을 동양 정치 문맥에서 재해석한 실천이었다. 간디는 『힌드 스와라지』(Hind Swaraj, 1909)에서 “정치적 독립은 개인과 공동체의 도덕적 자치 없이는 공허하다”고 하였다.
간디의 소금행진(1930)은 영국 식민정부의 소금세에 대한 시민적 저항이자 시민이 법의 수용 여부를 도덕적 기준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는 “도덕적 주권”의 선언이기도 했다.
현대에 접어들어 1980년대 폴란드의 ‘연대(Solidarność)’ 운동은 유럽 공산권에서 시민사회가 국가를 견제한 대표 사례이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의 시민사회 개념을 현실에서 보여준 예로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독립적 담론과 조직을 통해 주권을 행사하는 공간”으로 시민사회를 규정한다. ‘연대’는 단순한 노동운동을 넘어 자율 언론, 학교, 교회 등이 결합된 평행적 사회 구조(parallel society)를 구성하며 권위주의 체제에 실질적 대안을 형성했다. 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Tadeusz Mazowiecki)는 이를 “정치가 아닌 시민의 양심”이라 불렸었다.
역사는 종종 위대한 인물들의 이름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진정한 민주주의의 순간들은 '이름 없는 다수'에 의해 만들어진다.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다.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 시민들은 국가를 단순히 '지배의 장치'로 두지 않고, 주체적으로 구성하려 했다. 공통적으로 '지도자 중심 국가'가 아닌, '시민 주체 국가'를 실천하거나 그 가능성을 열어젖힌 순간들이었다.
계엄과 택핵 정국을 정통으로 맞은 현실 대한민국의 조기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국민의 선택은 늘 옳다라고 볼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계엄을 온몸으로 막은 민주 시민과 무리한 군대 명령에 대한 복종에 있어서 선택적으로 이를 방어한 합리적인 선택을 한 군인이 존재하는 한 대한민국은 ‘장미대선’이 아닌 ‘가시대선’의 길로 가고 있을지라도 백장미든 핑크, 붉은 빛의 장미든 그 민주주의 꽃은 시들지 않고, 활짝 필 것이라 확언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독재 DNA 정치적 문맹(文盲)에서 벗어나 정치 문명국이 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배문철(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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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4-2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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