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4월 27일 14시18분
한벽문화관 '화명원(和鳴院)'에 피어난 조선의 풍경, 전통혼례의 아름다운 부활
우정 이존한 집례자, 250여 쌍 이상 부부의 인연 맺어줘
문화관의 고즈넉한 풍경이 한순간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로 돌아가면서다. 마당에 모인 2백 여 명의 시민들과 관광객 사이로 설렘 가득한 웅성거림이 일었다.
전주한벽문화관 전통혼례청 '화명원(和鳴院)은 '화락하게 지저귀다'라는 뜻이다. 이곳은 부부가 금슬좋게 잘 화합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사대부 양반집을 연상하게 만드는 전통 한옥의 멋이 잘 살아있다.
혼례와 회혼례, 금혼식, 은혼식 등 잔치뿐만 아니라 혼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혼례 의상을 갖추어 전통혼례 체험을 할 수 있다.
'화명원'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장공(莊公)' 22년 조(條)에 나오는 '봉황우비(鳳凰于飛), 화명장장(和鳴鏘鏘)'이란 말로부터 취한 이름이다.
'암수의 봉황이 날아들어 사이좋게 같은 목소리를 내며 지낸다'는 뜻으로, 결혼을 축하할 때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그 이름은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가 지었고, 편액 글씨는 중하 김두경 선생이 썼다.
이윽고 누각 입구에 풍악대가 자리를 잡고 흥겨운 장단을 울리기 시작했다.
"저기 신랑이 오고 있어요!"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남색 단령에 사모관대를 갖춘 신랑이 천천히 걸어왔다.
그의 뒤로는 붉은 연지곤지를 찍은 신부가 화려한 활옷을 입고 따랐다. 신부의 긴 치마가 문화관 마루에 살짝 스치며 만들어내는 소리가 봄바람에 실려 퍼졌다.
두 쌍의 신랑과 신부가 한복 차림으로 나서자, 하객, 시민, 관광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오늘은 신랑 이정주 군과 한이슬 양의 전통혼례를 하는 날. "지금부터 '전안례'를 시작하겠습니다"
집례자인 우정 이존한선생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내가 숙연해졌다.
그는 2022년부터 전주향교 전통문화학교에서 예절교육을 하고 있다. 퇴직하고 한국전통예절연구원을 통해 예절교육지도사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지금까지 250여 쌍의 전통 혼례 집례를 했다. 또, 초·중·고등학교에서 예절교육을 하기도, 전주교도소 등의 인성교육을 담당하기도 했으니, 강사로 활동한 게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관세우' 의식에서 신랑과 신부는 작은 대야에 손을 씻으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정갈히 했다.
이윽고 신랑이 나무 기러기를 신부 측에 건네는 순간,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한 관광객은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을 실제로 보니 감동적"이라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전통혼례식은 신랑이 청사초롱을 따라가는 기러기아범의 뒤를 따르고 기러기를 상징으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전안례, 백년해로를 서약한다는 교배례, 하늘과 땅에 혼인을 서약하는 서천지례, 훌륭한 남편·어진 아내가 될 것을 다짐하는 서배우례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교배례'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절을 올리는 모습이 문화관의 고풍스러운 기둥 사이로 그림처럼 펼쳐졌다.
신부의 화려한 활옷 소매가 바람에 살짝 흔들릴 때마다 관객들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우정선생은 하늘과 땅에 맹세하는 '서천지례'를 이끌었다.
“오늘 이 자리는 단순한 결혼식이 아니라, 선비정신과 전통의 가치를 되새기는 큰 잔치입니다"
우정선생의 목소리가 문화관의 고요한 승암산의 공기를 가르면서 전주 한옥마을에 울려 퍼졌다.
참석자들은 혼례의 절차 하나하나에 숨을 죽였다.
우정선생의 안내에 따라 신랑과 신부는 세 번에 걸쳐 잔을 주고받았다.
신랑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합근례'에서 두 사람이 표주박에 담긴 술을 나눠 마시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신랑과 신부는 세 번에 걸쳐 잔을 주고받으며,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 술을 나눠 마시면서 일심동체의 인연을 확인했다.
첨석자들은 "요즘 젊은이들이 전통을 잊어가는 시대에 이런 행사는 살아있는 교육"이라며 "한벽당 인근 '화명원' 에서 펼쳐진 혼례는 그 의미가 더욱 깊다"고 말했다.
혼례가 끝나자, 신랑 신부는 주례의 축복을 받으며 기념 사진을 남겼다.
우정선생은 “이번 전통혼례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현대 사회에서 점차 잊혀가는 예식을 재조명하는 뜻깊은 자리였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행사를 통해 전주의 역사와 문화를 전국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우정선생은 완주 고산출신으로, 한국화가로 활동하면서 5회의 개인전을 가졌다.
완주 군민의 장 문화장과 제17회 교정대상 대상을 받았으며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 최고 경영자 과정을 수료한 가운데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등과 기타 초대 단체전 250 여회에 출품, 창암 선양회 휘호대전, 전라북도미술대전, 춘향미술대전, 온고을미술대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등을 역임, 전주예총 및 한국미협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새전북신문 객원 논설위원을 지내기도한 그는 현재 호산서원 원장, 우정회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주한벽문화관의 오래된 기둥 사이로 펼쳐진 전통혼례는 해가 중천에 뜰 무렵 막을 내렸지만, 그 여운은 참석자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과거로 돌아간 듯한 이 특별한 경험은, 전통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봄바람과 함께 울려 퍼진 한벽문화관 '화명원'의 전통혼례의 의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잊지 못할 풍경으로 남았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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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4-2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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