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수놓은 아름다움
[김미영 '수연아트', 자수 전시관에 가보니]'까치 호랑이' 등 걸작 즐비
"자수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통해 수를 놓아 전통적인 색상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작품 제작엔 남다른 정성과 인내력이 요구된다. 올해로 자수에 입문한 지 23년 여가 됐다. 자수의 강렬하고 추상적이며 조화로운 색감으로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정읍시 태인면 태인로에 작업실 겸 전시관을 마련한 김미영 대한명인(09-229-01호 동양자수). '수연 A&F 대표'로 '수연아트'를 개설, 자수 전시관을 갖고 있다.
조선시대의 자수는 크게 도화서의 화원이 그린 밑그림으로 궁녀들이 수놓은 궁수(宮繡)와 민간 여성들이 제작한 민수(民繡)로 나뉜다. 궁수는 고아한 기풍을 풍긴다면, 민수는 세련된 맛은 덜하지만 자유분방한 구도와 강렬한 원색대비가 두드러진다.
정교하고 섬세하게 수놓아진 실들을 보고 있자면 감탄이 절로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시력이 높은 사람도 거북이처럼 목을 내밀고 감상하는 것이 그의 자수의 묘미이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기억 속에 떠오르는 순간들이 더욱 더 그리워진다. 그 추억들의 한 자락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됐다.
어릴 적 집 근처엔 연못이 있는 공원이 있었다. 오월 단오면 할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그곳에 가셨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청포 물에 몸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그때 거기 활짝 피어 웃고 있던 연꽃들, 또르르 맑은 물을 흘려보내던 커다란 연잎들, 연밥을 콕콕 쪼아 먹던 작은 새들.... 지금도 그림처럼 그려진다. 집 대문 앞엔 커다란 버드나무가 있었다. 능청능청 늘어지던 버드나무 가지는 어느 여름날 언니 오빠의 회초리가 되기도 했다"
민화 중에서도 까치 호랑이 그림은 해학적이면서 우리와 매우 친근한 그림이다. 여러 버전으로 전해지는 까치호랑이 그림에서 공통적으로 호랑이는 선하게 입을 벌리고 웃고 있고 호랑이 머리 위 소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는 당당한 자세로 무어라고 호랑이에게 조잘대고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정겨운 그림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을까.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을까. 그런 감탄과 존경을 몇 번이고 입 밖으로 내뱉게 되는 작품이 바로 '까치 호랑이' 이다.
'행복', '일월오봉도', '쌍학흉배', '쌍호흉배', '비파', '늘솔길', '달보드레', '꽃잠' 등 작품도 눈길을 끈다. '꽃잠1'은 붉어지는 꽃버선이 버선코를 높이 치켜들며 살포시 눈을 감는 모습을, '꽃잠2'는 결혼한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하는 잠을 의미한다.
'꽃잎 하나하나'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다. 자수 속 이파리는 물론이고 꽃잎도 모자라서 암술과 수술을 정교하게 자아냈다. 멀리서 보면 한 폭의 그림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규칙을 가진 실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화가들이 물감으로 말하듯이 작가는 바늘과 실로 이야기한다. 이미 하고 싶은 말들을 잔뜩 수놓아 놓았으니 한 폭의 그림 앞에 서서 직접 느끼고 배우면 된다.
"할머니처럼 굽은 허리 펴며 저절로 나오는 이 혼잣말에 웃음이 난다. 꼼꼼하게 수놓으면 부드러움이 마음에 오고, 수수한 실을 꿰어 수놓으면 따뜻함이 마음에 들어오고, 듬성듬성 거친 나뭇결을 수놓을 때면 여유로움이 나를 치유한다. 자수는 나의 위안이고, 늘 함께하는 친구이다. 자수에 취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루 꼬박 같은 자리에 앉아 있기도 한다. '아, 재미지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월, 오늘 이 시간들이 설렘으로 다가옴을 감사한다"
작가는 전주출신으로, 한려대학교 보건학부 언어치료 예술치료학과를 졸업, 미르갤러리, 전통자수공예관, 교동미술관, 권번문화예술원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통일미술대전 대상, 전주전통공예전국대전 금상 등을 받았으며, 전북전통공예인협회 초대작가, 김미영 전통공예공방 '수연A&F'대표로 한국 전통자수문화원 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이종근기자
지면 : 2025-04-2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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