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박은희 - 2025년 04월 17일 14시44분
영욕의 역사 함께한 100년, 김제 백석초 100주년
전쟁과 혼란, 가난과 굶주림 속에도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교실서 수업
농촌소멸·폐교위기 슬기롭게 극복
졸업생, 사회 각계각층 활발히 활동
김제 백석초등학교가 19일 100주년 기념행사를 한다. 백석초등학교 총동문회가 주최하고 ‘백 년의 얼, 천 년의 꿈’을 주제로 열리는 이날 행사는 개교 100년을 기념하는 기념탑 건립과 세계도시 이정표 설치와, ‘백석초 100년사' 편찬, 은사님 찾기, 동문 행사 등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이 학교 동문 4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근대교육 제도를 도입하여 문을 연 역사 깊은 학교들이 그러하듯이 백석초등학교는 한국의 발전과 성장, 아픔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6.25전란, 쿠데타와 권위주의 정부, 민주화의 과정을 함께해온 역사다.
1960년대 금산사 현장체험학습
백석초등학교가 문을 연 것은 1925년. 일본은 1910년 합방 이후 무단정치로 일컬어지는 강압적인 정책을 펴왔다. 조선의 발전을 억제하고 수탈 정책을 일관했다. 그러나 1919년 3 · 1운동 이후 조선 백성의 반발을 확인한 뒤부터 제한적으로나마 개발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백석초등학교가 문을 연 것도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가능했다.
백석초는 당시 현재의 김제시에서 김제초, 김제중앙초, 원평초에 이어 4번째로 개교한 학교다. 시내 번화가와 함께 일찍 개교한 데는 이곳 백산면 일대가 넓고, 기름진 평야가 펼쳐져 일제의 쌀 수탈로 농민과 일본인 거주자가 많았던 때문이다.
개교 당시 백석초등학교는 4년제 학교였다. 따라서 중학교에 진학하려면 학교를 졸업한 뒤 다시 6년제가 개설된 김제나 만경으로 옮겨 졸업해야 가능했다. 6년제가 된 것은 개교한 지 9년째 되던 1934년.
당시 모든 교육과정은 식민지 조선의 백성을 황국 신민화하는 것. 따라서 모든 수업이 일본어로 이뤄졌고, 교장과 교사들 또한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학교에서 조선말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물론 학생들끼리도 조선말을 하지 못 하게 했다. 이 학교 20회 졸업생인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일제 말기인 1942년 입학했는데 “매달 표 딱지를 약 20매씩 나누어 주어 한국말을 할 때마다 이를 지적한 사람에게 표 딱지를 내도록 경쟁시키고, 그 결과는 국어 성적에 반영했다”라고 증언한다.
1990년대~2008년 교사(2층 건물)
수업뿐 아니라 학교생활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 낮에는 산에 가서 송진이 엉킨 소나무 가지인 관솔을 따거나 퇴비를 만들기 위해 풀베기에 나섰다. 학생들을 통원해 관솔을 딴 것은 일제 말이 전쟁에 동원하느라 연료가 부족하지 이를 충당하기 위해 송진 채취에 혈안이 된 때문이다, 송진따기와 풀베기 같은 고단한 학교생활에도 틈만 나면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았는데 축구공 하나 없어 새끼를 말아 만든 공을 차며 놀았다고 한다.
해방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일본인들이 물러가자 교사들도 한국인으로 바뀌었다. 개교 1년 전인 1924년부터 기록한 학교 연혁지가 있는데 ‘1945년 8. 15. 일제로부터 해방’이라는 짧지만, 감격스러운 기록이 남아있다.
전쟁과 혼란,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도 배움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비단 백석초등학교만의 현상은 아니었지만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들이 초등학생이었던 1970년 초반에는 16학급 9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교실과 운동장을 채웠다. 면 단위 학교치고는 제법 큰 규모였다.
100여 년 동안 학교의 외형과 학교생활도 많이 바뀌었다.
목조 건물로 개교한 학교는 1층 조작 건물을 거쳐 현재는 체육관과 도서관, 일반 교사 2동을 갖추고 있다.
학생들의 생활 모습도 매우 달라졌다.
학급당 학생 수가 60명이 넘어서 말 그대로 콩나물시루처럼 꽉 찬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지만, 현재는 교과전담 교사가 배치되고 수업에 따른 특별실까지 갖춰져 있다.
보리밥에 김칫국물, 달걀부침으로 기억되는 도시락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백석초등학교도 도시화와 탈농을 비껴가지 못했다. 1980년대 들어서 학생 수가 급감하기 시작하였고, 2001년에는 6학급 100명 이하로 줄었고, 2008년에는 53명까지 줄어서 폐교 대상 학교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모교의 쇠락을 안타깝게 여긴 동문과 주민들이 나서 2008년도에 내부형 공모 교장으로 ‘김용규’ 교사를 교장으로 추대, 다양한 특색교육으로 성장의 전기를 마련했다. 2011년부터는 신입생 추첨으로 선발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계속되는 전·입학 문의로 2023년부터 실거주를 확인하는 엄격한 절차를 걸쳐 신입생을 받는 인기 있는 학교가 되었다.
100년 역사를 지닌 백석초는 그동안 5,368명의 졸업생을 배출,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제20대 건설부 장관과 제22대 한은총재를 지낸 박승(20회) 동문은 학교에 도서관을 신축 기증했다. 뿐만 아니라 10억 원의 개인 재산을 내 박승 장학회를 설립,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윤동희 총동창회장과 오경숙 백석초 교장
모교인 백석초등학교가 100주년을 맞이했으니 개인적 기쁨과 자랑에 앞서 동문 모두의 자랑이라 여깁니다.
돌이켜보면 이곳에서 배운 지혜와 인내, 사랑은 지금도 제 삶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습니다. 저뿐 아니라 백석초등학교가 배출한 동문 모두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느 학교 동문보다 모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가져주시는 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백석초등학교의 100년은 숱한 고난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개교 초기인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말을 배우지도 말하지도 못 하게 했습니다. 전쟁에 광분한 일제는 어린 학생들을 송진따기와 풀베기에 동원했습니다. 6.25 전쟁도 겪었습니다.
100년 역사 동안 우리 동문들은 오직 배움의 열정으로 그런 고통도 감내해냈습니다. 100주년은 다가올 새로운 100년을 향한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특히 우리 백석초등학교는 농촌소멸과 폐교의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한 학교입니다. 특색있는 교육으로 이웃 지역에서 백석초등학교 입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이 넘쳐납니다. 자랑이고 계속 지켜나가야 할 가치입니다.
앞으로도 백석초등학교가 우수한 지역 인재를 길러내고, 나아가 대한민국 발전의 중심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고 동문 모두가 힘을 보태겠습니다.
저희 백석초등학교가 따뜻한 봄날, 100주년을 맞습니다.
4월은 역사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생동하는 달이고, 새로운 변화와 시작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백석초등학교가 문을 열고 학생을 맞이한 날도 100년 전 4월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제가 교장을 하면서 100주년 기념행사를 함께할 수 있어 뜻깊고 기쁘게 생각합니다. 우리 백석초등학교는 엄혹했던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시에도 쉬지 않고, 지역 사회 어린이들의 교육을 책임져왔습니다. 어려운 시절에도 배움의 등불을 꺼트리지 않고, 교육을 통해 스스로 희망의 불꽃을 지펴온 학교의 발자취는 우리 모두에게 큰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백석에서 꿈을 키운 졸업생들은 국회의원, 장관, 법조인, 의사, 교수, 예술인, 사업가, 체육인 등 각계각층에서 역량을 발휘하며 사회를 빛내고 있습니다.
특히나 저희 백석초등학교 동문들은 후배들의 교육을 위하여 해외 수학여행, 도서관, 영화관 신축 등 교육활동과 환경개선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선배님들의 발자취는 후배들에게는 자랑이자 본보기가 되어 앞으로 나아갈 미래를 더욱 빛나게 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저를 비롯한 교직원들은 자랑스러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김제=백용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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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4-1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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