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김상훈 - 2025년 04월 09일 15시24분
교제폭력 피해 주장한 40대 여성, 항소심서 감형
폭행 피해 인정됐지만, 심신미약·정당방위 불인정시민단체 “한국사법 시스템 한계, 재판부 판결 규탄”
교제폭력에 시달리다 방화로 남자친구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감형받았다. 법원은 반복된 폭행 사실은 인정했지만, 심신미약이나 정당방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양진수)는 9일 현주건조물방화치사 혐의로 기소된 40대 여성 A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는 1심에서 선고된 징역 12년보다 감형된 형량이다.
A씨는 지난해 5월 11일 군산 한 주택에서 술에 취해 잠든 남자친구 B씨 근처 이불에 불을 질러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불은 집 전체로 번졌고 당시 A씨는 주택 밖에서 불길을 바라보며 “꺼졌다면 제가 죽었을 것”이라고 수사기관에 진술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숨진 B씨는 A씨에 대한 교제폭력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출소했고, 이후에도 흉기를 들이대거나 담뱃불로 A씨의 신체를 지지는 등 폭행을 반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당시에도 A씨는 술에 취한 B씨에게 주먹으로 맞거나 목을 졸리는 등 폭행을 당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사정을 일부 인정했지만, 심신미약이나 정당방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행 당시 피해자는 만취해 잠든 상태였고, 피고인은 주택 안팎을 오가는 등 상당한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침해의 현재성이 없어 정당방위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정신감정 결과에서도 “사고 현실검증력과 판단력이 유지된 상태였다”며 심신미약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A씨가 장기간 폭행을 당했고 범행 당일에도 폭행이 있었던 점은 양형에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재판부는 감형 이유에 대해 “피고인이 장기간 교제폭력에 시달려 왔고, 범행 당시 무기력감과 분노를 느끼는 정신적 불안정 상태였던 점을 고려했다”며 “확정적 살인의도가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행으로 판단된다”고 판시했다.
이날 판결 이후 시민단체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는 전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판결을 강하게 규탄했다. 이들은 “교제폭력 생존자의 방어행위를 단순한 형사범죄로 취급한 판결”이라며 “여성 생존권을 외면한 채 합리적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만 판단한 사법부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교제폭력 피해자에 대한 정당방위 인정, 보호 체계 마련, 관련 법 제정 등을 촉구하며, "이 판결은 피해자가 죽어야만 보호받을 수 있다는 왜곡된 메시지를 사회에 던진다"고 비판했다.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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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4-1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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