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3월 22일 21시23분
[월요아침]전주 덕진연못과 건지산이 파산(破産)당하다
건축물만 문화유산이 아니다. 연못과 산도 자연유산이다. 이러한 자연유산을 국가유산청은 명승지와 사적지로 지정하여 보존 관리하고 있다. 건지산 조경단은 전주가 조선왕조의 발상지임을 밝혀주는 전라북도 지정 기념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건지산은 전주의 주산이라 하였다. 주산은 우주산같은 신산(神山)이었다. 1872년 조선후기 전주지도에 건지산의 주봉을 도솔봉으로 표기하였다. 도솔봉은 도솔천(兜率天)의 세계라는 뜻이다. 도솔천 내원궁은 다음 생애에 가장 살고 싶은 이상향의 세계, 즉 극락세계를 말한다. 건지산의 극락세계 설정은 조경단이 말해준다. 조경단(肇慶壇)은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瀚)의 묘가 위치한다는 음택명당이다. 고려시대 이후 줄곧 이한의 묘에 대한 진위 여부에 논란이 지속되다가 광무3년(1899)에 고종황제가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조경단으로 이름하였다. 조경단이 얼마나 좋은 음택명당인지 건지산지형도를 보면 탄성이 나온다.
고종황제는 건지산에 조경단을 조성하고 창경궁 금표(昌慶宮禁標)를 설치하였다. 금표는 건지산 입산금지의 돌푯말이다. 고종황제는 건지산에 들어가서 나무베는 벌목을 왕명으로 금지시켰다. 건지산지형도는 건지산과 덕진연못이 동일체로 묘사하였다. 전주시는 120여년전 고종황제의 왕명을 거역하고 덕진연못의 나무를 벌목하고 건지산에 데크(deck) 시설로 파탄낸 것이다. 역사인식이 천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어찌 덕진연못을 벌목하고, 건지산에 테크시설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심각한 것은 건지산 데크 설치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자연숲속에 조성하였다. 건지산의 남쪽에 이어 북쪽에도 데크 시설로 건지산을 감쌀 태세다. 마치 자연환경 파괴의 막장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어떤 노학자는 전주시가 수십년간 키운 가로수를 싹뚝 베는 것에 분노하면서 수목보호법(樹木保護法)을 제정해야 한다는 원성섞인 불만을 토로했다. 지금까지 수십수백년간 지켜온 자연유산을 어찌 전주시가 앞장서서 파탄낼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의 생명이 소중듯이 나무의 생명도 소중하다. 사람도 나이가 차면 세상을 떠나듯이, 나무도 오래되면 고목으로 자취를 감춘다. 수령(樹齡)이 오래된 나무일수록 가지치기도 고사(告祀)지내고 손질을 한다. 노거수의 나뭇가지를 함부로 꺾었다가 동티(動土)났다는 말을 무수히 들어온 터라, 전주시의 자연환경 파괴는 무모함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연환경은 그대로 놔두는 게 최상이다. 자연유산은 한번 훼손되면 원상복구가 어렵다. 인간은 자연환경이 베푸는 혜택을 받고 살아가는데 자연환경을 해치는 무모한 행위는 반드시 댓가를 치를 것이다. 특히 건지산찾는 사람들은 편백나무숲 사이를 걸으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내고 또 봄을 맞이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누가 이 행복한 삶을 파괴하려 하는가. 건지산과 덕진연못의 경관은 전주시민의 몫이지 전주시장의 몫은 아니다. 1970년대식 개발독재 논리로 역사와 문화를 깡그리 무시한채 벌목하고 포크레인으로 연못을 파헤치고 숲속에 데크시설을 주도하는 우범기 전주시장이 답을 해야 한다. 자연환경의 소유권이 우리세대에 있는지 자손세대에게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극히 짧은 인생을 살다가는 인간의 오만방자를 전주시의 자연환경 파괴에서 목격하고 있다. 자연은 인간이 돌아갈 영원한 안식처이다. 안식처를 파헤치면 어쩌자는 것인가. 전주시는 덕진연못과 건지산이 개발대상이 아니라 보존해야 할 자연유산 임을 망각하지마라.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유산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라. 후손들의 몫이다.
송화섭(전 중앙대 교수,(사)호남문화콘텐츠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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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3-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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