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3월 20일 13시43분
[금요수필] 봄 그리고 어머니
박경숙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무 말 없이 일어서다 몇 걸음 만에 다시 쪼그리고 앉으신다. 그리곤 땅바닥에 얼굴이 맞닿도록 가까이 대고 한참을 살피다가 “냉이는 없네….” 하신다. 그러나 그곳에는 냉이와 쑥이 지천으로 피어 있다.
어머니는 나물 캐기 선수셨다. 우리 형제는 도심에서 나고 자랐지만, 유난히 봄을 챙기는 어머니 덕분에 흙과 풀 냄새에 친숙하다. 봄이 되면 온 가족이 산과 들에 나가 봄 소풍을 즐기곤 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바람처럼 들판 이곳저곳을 다니며 쑥이며 냉이를 캐곤 하셨다. 나는 봄나물을 캐는 일보다는 나비와 진달래꽃을 쫓아 놀기에 바빴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판을 쏘다니다 나물 바구니를 내밀면 언니들은 쓸데없는 풀만 캐왔다며 면박 주기 일쑤였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얘는 매번 그러잖니.” 하며 나를 끌어당겨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하였다. 그 어머니가 이제는 나물과 풀도 구별하지 못하다니….
철없던 사춘기 시절, 나는 어머니께 바보짓을 많이 했다. 아버지를 도와 사업하는 어머니를 이해하기는커녕 몽니를 부리기 일쑤였다. 가족의 허기를 책임지며 허리가 휘는 부모님 덕분에 생활은 윤택했지만, 고마움을 느끼기보다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딸보다 공장 사람들을 더 많이 챙기는 어머니를 미워하며 원망했다. 결혼하고 사업하는 남편을 돕는 지금에야 어머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헤아릴까.
어머니가 좋아하는 조기를 구워 도톰한 살을 발라 수저 위에 놓아 드린다. 어릴 적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었던 그대로다. 하지만 어머니는 생선 살을 기어이 내 밥그릇에 옮겨 놓고 다른 반찬만 집으신다. 한평생 궂은일 마다하지 않으셨던 어머니. 이제는 자식들에게 당당히 요구해도 좋으련만 무얼 드시겠느냐고 물으면, 당신은 그저 너희 먹고 싶은 거 먹으면 된다고 하신다. 아마 이건 우리 어머니 평생 못 고칠 병인 듯싶다.
공원에서 캐온 쑥과 냉이를 주방에 앉아 다듬는다. 앞에 앉은 어머니의 느린 손놀림도 분주하다.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놀러 오너라.” “또 나물 캐러 가게요?” 어머니 얼굴이 봄꽃처럼 환히 피어난다. 어머니를 다시 찾는 그날, 울안에 개나리도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겨 주겠지.
박경숙 수필가는
전주 출생. 2016년 '계간수필'에서 수필 추천 완료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회원
수필집'미용실에 가는 여자'
2021년 전북수필문학상 수상. 2022년 산호문학상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역임
현재 전북문인협회 이사
지면 : 2025-03-21 7면
http://sjbnews.com/8445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