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3월 13일 14시22분
[금요수필] 생전 장례식
윤철
장례식은 죽은 사람의 천도를 기원하며 가족, 친지들이 모여 고인의 삶을 되새기고 슬픔을 나누는 중요한 의례이다. 고인이 세상을 떠난 후에 가족들에 의해서 치러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장례식을 직접 주관한다는 게 가당한가? 왠지 차가운 바람이 휙 지나가는 섬뜩함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얼마 전에 경기도 양평 어느 교회에서 열린 80대 할머니의 생전 장례식 행사가 보도되었다. 행사 준비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전통적인 장례식도 어려운 일인데 사례가 거의 없는 생전 장례식이니 얼마나 힘들었으랴. 행사를 주관한 첫째 딸은 “무엇보다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라고 증언했다. 어머니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는 소식에 자식들이 모두 동의한 다음에야 마음 바쁘게 엔딩 파티를 준비했다는 후일담을 전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자식들과 손자 손녀 그리고 친인척, 지인들이 둘러앉았다. 주인공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영상을 같이 보고, 그녀가 평소 좋아했던 색깔인 보라색 테이블보 위에 차려놓은 도시락으로 맛있는 식사를 했다. 손자·손녀는 할머니를 위해 노래를 불렀고, 딸은 어머니를 향한 편지를 낭독했다. 참석한 친지와 지인들은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건강을 축복하고 덕담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100세 시대인지라 아직 살날이 많겠지만, 참석했던 친인척이나 지인 몇몇은 그 자리가 마지막 상면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죽음을 준비하며 재산상속을 유언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의 사망 이후에 일어날 일과 장례 방식 등을 유언으로 남기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생전 장례식을 자신이 직접 준비하여 치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식으로서는 생전 장례식이 부모의 죽음을 재촉하는 행위처럼 느껴질 우려가 있어 꺼릴 수밖에 없다.
장례 의식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하나의 문화일 뿐이다. 부모의 장례식을 집이 아닌 장례식장에서 치르는 것을 불효로 받아들였던 때가 불과 30년 전 일인데 지금은 일반화되어 있지 않은가? 장수의 상징이었던 회갑 잔치가 거의 사라졌다. 요즘은 팔순 잔치도 가족끼리 모여 식사하는 정도로 간단해졌다. 노인들 입장에 선 서운할 수도 있는 세태의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부모의 건강 상태에 맞춰 좋은 날을 잡아 “생전 장례식”을 치르는 문화가 번졌으면 좋겠다. 최소한 90살까지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살기를 소망하는 뜻으로 9순 잔치를 생전 장례식으로 치르는 것도 아름다울 것 같다. “생전 장례식”이란 용어가 섬뜩하면 “인생 송별식”도 괜찮지 싶다. 나의 생전 장례식은 88살 생일날, 2038년 9월 29일에 치를 예정이다. 행여 생전 장례식이 무산되지 않도록 꾸준히 운동하며 건강도 잘 챙기고, 손자 손녀에게 들려줄 해학 넘치는 덕담도 미리 준비해야 하겠다.
윤철 수필가는
'에세이스트' 신인상으로 등단,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역임
수상 : 전북수필문학상, 새전북신문문학상, 리더스에세이문학상 등 다수
수필집 : '칸트에게 보내는 편지', '당신 가족은 안녕한가요', '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
(현) 전북특별자치도문인협회 부회장
지면 : 2025-03-14 7면
http://sjbnews.com/843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