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3월 05일 16시15분
[문화로 이야기꽃]차 한잔의 문화전쟁과 평화
잘라 말하면 이제 차는 ‘소비전쟁터’가 되었다. 티타임이라는 문화가 생겨 나면서 부터 이미 전쟁터였다. 커피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스타벅스가 티바나(Teavana)를 인수(2012)하며 시작된 커피 아닌 프리미엄 글로벌 차 시장 쟁탈전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고급차인 프리미엄 루스 리프 티, 허브티를 젊은 층과 건강에 관심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전투용 조명탄을 쏘아 올렸다. 그러나 5년 뒤 티바나 매장 철수라는 후퇴 작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차 음료시장에서 티바나는 녹차, 홍차, 허브티, 우롱차, 화이트티 제품으로 중국에서 지금도 국지전을 펼치고 있다. 커피 시장과의 접전 속에서 밀크티나 버블티 열풍은 MZ 세대를 향해 여전히 공격앞으로 명령을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20대 여성의 68%가 주 3회 이상 유료 차 음료를 구매한다는데, 차를 소비하는 양은 0.17kg으로 세계 39위이다. 커피는 세계평균이 152잔인데 우리는 405잔을 마신다. 출근길 초헌을 시작으로 아헌, 종헌까지 착실히 챙긴다. 미국, 일본을 가볍게 밟고 올라 서 있다. 이제 차던 커피던 기호음료 사장은 특정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지만 이 화려한 차소비 행동 뒷편에는 문화적 긴장이 도사리고 있다. 전통 다원(茶園)과 프랜차이즈 카페의 대립, 고급 수입차와 국내 재배 차의 위상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한 잔의 음료가 계층·세대·국가의 이해관계를 노리고 있다.
찻잔 속에 비친 평화의 가능성은 역사 속에서 화려하게 빛났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서로를 쏘지는 않는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서 진행된 한·중·일 공동 차 시연회가 보여주듯, 차는 여전히 최고의 문화사절단이자 외교관이다. 우리나라의 다례, 일본의 다도, 중국의 차 제작 기술이 한 자리에서 조화를 이룰 때, 찻잔은 역사적 아픔을 넘어선 상생 평화의 그릇이 된다.
기업의 화상회의에 등장하는 개인별 맞춤형 티 박스도 주목할만하다. 건강·계절·취향·테마 맞춤으로 티박스를 챙기는 젊은이들은 SNS에서 공유하는 #차_마시며_진정하기 챌린지에서도 복잡한 마음속 전쟁을 화평으로 이끌어 낸다. 이민자 커뮤니티의 다문화 차 모임은 그대로 문화공동체 활동으로 사랑이 넘친다. 디지털 시대의 차 문화는 이처럼 물리적 경계를 해체하며 새로운 공동체 평화를 빚어낸다. 커피를 마시는 집단보다 차를 함께 마신 집단이 협상 성공률이 더 높지 않을까라는 가설도 연구 해 봄직 하지 않을까.
차 세계의 유토피아를 향한 항해도 다양하다. 올해 4월 중에 열리는 'K-Tea' 국제차문화산업박람회는 우리 전통차를 기반으로 현대적인 차문화 아이콘을 창출하려고 한다. 차문화와 엔터테인먼트의 융합 현장이 될듯하다. 차는 이제 국가 브랜드 전쟁의 핵심 무기다. 하지만 진정한 승리는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문화적 포용력에서 나온다. 프랑스의 젊은이들이 한국식 연유 밀크티에 매료되는 동시에, 남쪽 지역의 유기농 녹차 농장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몇년 사이에 크게 늘었다. 이는 차가 창조하는 다면 융합적 평화의 증거다.
지금 같은 기후위기의 소용돌이시대에 차 농업의 지속가능성은 인류 평화의 과제가 되었다. 스리랑카의 유기농 차 재배법을 도입한 제주도 농가, AI로 최적 수확 시기를 예측하는 차원(茶園), 친환경 티백 개발을 위한 글로벌 컨소시엄. 찻잎 한 장에 전쟁과 평화가 교차로 담겨있다. 하지만 이 전쟁은 결코 파국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뜨거운 물이 차 잎에 스며들듯이, 차가 지닌 포용 본능이 날카로운 갈등을 누그러뜨릴 테니. 차 한잔에 비친 우리 시대의 문화는 전쟁과 평화를 넘나드는 취향이자 단절이다. 자본주의의 전쟁터이자 문화활동의 융합이다. 찻잔을 들여다보면 미래의 사회문화와 마주한다. 전쟁과 화평을 이끌어 유지시켜 줄 균형추를 다시금 가다듬어야 하지않을까.
/이흥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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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3-0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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