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5년 02월 25일 14시35분
[지역의 재발견]전라도는 보수인가 진보인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이념은 독립운동의 한 가지 방법으로 당시 조선 청년치고 혹하지 않는 이가 드물었다. 서정주조차 소년기에 사회주의 이념을 추종했을 정도니 말이다. 그때는 일제에 대항하는 것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이라는 물줄기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1917년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이 성공한 이후 독립운동가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회주의자로 변신하였고 무정부주의자들까지 합세하여 그 기세가 대단했다.
그런데 본래 사회주의란 한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를 공산화시키는 것이 목표이므로,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은 코민테른의 자금과 지시를 받아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임시정부에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의 대립이 격화되어 서로에게 테러를 가하고 심지어 죽이는 일조차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많았던 곳은 대구와 안동을 중심으로 한 경상도다. 그래서 대구를 조선의 모스크바라고 불렀다. 의열단, 조선공산당, 빨치산의 지도부와 열혈활동가들 대부분이 경상도 출신인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심지어 1963년 지리산에서 검거된 마지막 여자 빨치산 정순덕도 경상도다. 1946년 대구폭동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 남로당은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 등으로 인해 공산당 활동이 불허되자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9월에 전국 총파업을 일으키고 그 여세를 몰아 대구폭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럼 전라도는 어땠을까. 전라도는 농업중심의 사회인지라 공동체의식을 중요시하고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일제강점기 경상도에 비해 사회주의 투쟁가가 적었다. 여순 반란사건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산악지역에 일명 무장공비라 불리는 빨치산이 활동했지만, 그 구성원 대부분은 전라도가 아니라 외지인이었다. 전라도 사람은 물자수송과 길 안내를 목적으로 반강제적으로 입산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야당의 뿌리를 찾아 올라가면 한민당으로 연결된다. 한민당은 전라도의 대지주이며 동아일보의 설립자, 고려대학교를 만들고 경성방직주식회사를 설립했던 인촌 김성수를 핵심으로 하여 고하 송진우 등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힘을 모아 만든 정당이다. 김성수가 음으로 양으로 독립운동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친일파로 낙인찍혔지만, 본래 한민당은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을 외치며 건국에 주도적 역할을 한 정당이다. 당시엔 대표적인 보수정당이었다. 해방 후 전라도는 보수 쪽에 서 있었다고 봐야 한다.
1963년 박정희와 윤보선이 맞붙었던 대통령 선거에서 전라도가 박정희를 밀어준 덕분에 당선될 수 있었고, 1971년 선거에서는 지역감정이 드러나 김대중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광주 민주화운동 이듬해 1981년, 그리고 1985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은 전라도에서 근소한 차이나마 야당을 누르고 승리했다. 이때까지도 전라도는 보수 쪽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1988년 평화민주당이 등장하고 황색 돌풍을 일으키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전라도에서 민정당은 한 석도 얻지 못했고, 평민당 또한 경상도에서 외면받았다. 바로 이때부터 정치적 지역구도가 나뉘게 된 것이다. 전라도 사람으로서 느껴온 차별과 소외감, 그런 한과 정서가 선거를 통해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몇 차례 선거를 치르는 사이 전라도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보 좌파 쪽에 서게 되었다. 외부에서는 전라도를 진보적이라고 본다. 어떤 사람은 전라도가 빨갱이들이 사는 곳이라고까지 한다.
지역감정은 절대 전라도에 도움이 되지 않고 피해만 준다. 우리 자녀들이 밖에서 자랑스럽게 “나는 전라도 사람이요.” 말 못하고 고향과 말투를 숨기고 있다. 기업을 유치하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한번 묻고 싶다. 전라도는 보수인가 진보인가./소설가 박이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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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2-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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