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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2월 06일 12시39분

세계는 인간의 마음과 실천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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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재론의 부상(지은이 마누엘 데란다 , 그레이엄 하먼, 옮긴이 김효진, 펴낸 곳 갈무리)'은 오랫동안 실재론자로 자처해온 두 명의 철학자, 마누엘 데란다와 그레이엄 하먼의 대담이 펼쳐진다. 꽤 최근까지 대륙철학 전통에서 훈련받은 거의 모든 철학자는 실재론에서 가치 있는 무언가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대륙철학에서는 실재론이 일반적으로 사이비 문제로 여겨졌다. 그런데 사정이 더는 그렇지 않다.

이 자극적인 새 책에서 두 명의 선도적인 철학자는 대륙철학적 전통에서 실재론이 두드러지게 부상하고 있는 현상을 놓고 자신들의 고유한 입장 사이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사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작업을 고찰한다. 데란다와 하먼은 실재론과 유물론, 실재론과 반실재론, 실재론적 존재론, 인지와 경험, 시간, 공간, 과학 등의 주제에 관해 토론한다. 또 이들은 더 잘 알려진 대륙철학적 입장과 방법들, 특히 들뢰즈의 ‘잠재영역’ 존재론이나 후설주의적 현상학으로부터 자신들이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것들과 자신들의 입장이 어떤 차이를 갖는지에 관해 서로의 생각을 교류한다.

생생하고 가독성이 있으며 몰입하게 하는 이 책은 대륙철학에서 실재론의 여러 가지 다른 경로를 밝히기 위해 여태까지 실행된 시도 중 최선의 것이다. 이 책은 대륙철학의 학생들과 학자들에게, 그리고 오늘날 철학과 비판 이론에서 벌어지는 최첨단의 논쟁들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 매우 가치가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대륙철학’에 뿌리를 둔 몇 가지 철학 사조의 최근의 추세를 가리킨다. 21세기 이후 대륙철학에서는 ‘사변적 실재론’, ‘신실재론’, ‘신유물론’, ‘객체지향 존재론’, 그리고 ‘평평한 존재론’ 등의 철학적 기획들이 나타났다. 이런 기획들은 세계의 존재자 및 현상과 관련된 이런저런 종류의 ‘실재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19세기와 20세기 대륙철학의 입장들과 방법들을 특징지었던 것은 다양한 판본의 관념론과 반실재론이었다. 최근의 실재론들은 이러한 과거의 경향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예를 들어서 최근의 실재론들은 포스트칸트주의적인 관념론들과 더 최근의 사회·언어·문화 구성주의들로 대표되는 인간중심주의적인 반실재론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새로운 ‘대륙’ 실재론들이 공유하는 하나의 출발점은 ‘인간의 마음 및 실천과 독립적인’ 세계의 실재를 단호하게 긍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존재자와 현상의 본성들과 관계들은 어떤 주관적이거나 언어적인, 또는 사회적인 형태의 인간 지각, 인간 인지, 인간 표상 등에 의거해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나 접근에 관한 물음과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실재론자들은 주장한다.

최근의 대륙철학에서 인간과 독립적인 사물의 실재성, 사물의 물질성, 사물의 행위성을 강조하는 사조인 ‘실재론’들의 부상이 나타난 까닭은 무엇일까?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로 특징지어지는 인류세 시대는 폭염, 초강력 폭풍, 홍수, 기근, 팬데믹, 멸종 등을 일상적인 조건으로 만들었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의 주인도 아니고 세계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일상에서 비인간의 실재성과 행위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새로운 실재론자들에 따르면 대륙철학의 전통을 대표하는 포스트칸트주의적 관념론과 구성주의 이론들은 근본적으로 인간중심주의적인 기본 도식을 채택하고 있다. 인간중심주의는 인류세 시대의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문명적 위기를 성찰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철학적, 윤리적, 정치적 질문들을 제기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현실이 인간중심주의 관점에 반기를 드는 실재론적 존재론이 전 세계적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배경이다. 이 책은 대담의 주제에 따라 구분된 다섯 개의 부로 이루어져 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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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5-02-07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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