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5년 02월 05일 14시29분
맑고 신비한 아름다움을 빚는다
김스미의 미술산책〈62〉 희뫼 김형규의 ‘달항아리’시공의 감각을 초월한 희뫼 예술의 깊은 내공
수려한 형태, 자존의 철학이 묻어나는 달항아리
이 불가사의한 한국미의 정수인 달항아리를 빚는 도예가 김형규(1968-)의 희뫼요는 장성군 구황산 기슭 청림마을이다. 저수지를 돌아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진달래꽃 흐드러진 그가 만든 샹그릴라로 가는 유일한 통로가 있다. 그는 이곳에서 바람에 황토를 이겨 입구가 일곱 개나 되는 용가마를 만들고 집을 짓고 마을을 건설했다. 설산(雪山)의 흰 소가 항아리 빚는다고 하여 ‘백우헌(白牛軒)’이라 이름 짓고 호를 희뫼라 한다. 그의 달항아리를 보노라면 뼛속까지 분명 조선 도공의 환생임을 짐작게 한다.
도자기는 확실한 쓰임과 익명성으로 인해 아트(Art)가 아닌 공예였다. 그러나 조선백자, 특히 18세기 금사리에서 만들어진 둥근 달 모양, 백자대호의 유백색 미감은 단숨에 예술의 최고 반열에 오른다. 동양의 사상과 철학을 담은 조선백자의 유려한 선은 친숙함과 정겨움으로 세계도자사의 으뜸 작품이다. 이에 수화 김환기(1913-1974)는 달항아리라 이름 붙였다.
희뫼의 달항아리는 세련된 자태나 빛깔, 느낌의 격이 달라 수많은 낱말을 동원해도 다 표현하기 어렵다. 한없이 부드러운 유백색 피부를 가진 수려한 형태,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리를 품은 자존의 철학이 짙게 배어나는 항아리다. 항아리 제작과정을 보면, 백토로 모양을 만들고 초벌 후 유약 처리하여 가마에 넣고 불을 지피면서 신명을 다한다. 그는 사흘 낮과 밤을 꼬박 지새우면서 천천히 약 불로 시작하여 세게, 때로는 폭풍처럼 거칠게 나무를 밀어 넣으면서 모든 힘을 다해 가마에 불을 땐다.
‘반은 내가 만들고 나머지는 가마 신이 완성하는 거여, 그릇 빚을 때보다 불 땔 때 공력이 열 배는 더 들어’ 이렇게 하여 태어난 항아리를 그는 자식처럼 안고 며칠을 지내다가 빙의당(氷衣堂)에 올려놓는다. 빙의는 얼음처럼 투명하고 맑다는 표현으로 전시관 이름으로 제격이다. 항아리는 때가 되면 인연 따라 떠나갈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숲에 살면서 하얀 무명옷을 입고 오랜 시공의 감각을 이미 알아 버린 희뫼 예술의 깊은 내공을 그의 달항아리가 다 품었다.
개성과 독창성이 뛰어난 그의 달항아리는 단순한 형태적 감각을 떠나 미적 인식의 차원을 넘어 감정의 지평을 승화시키고 또 다른 정신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마력이 있다. 그때 만난 것은 이전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영적 위안이었다. 과연 현대 작가의 작품 중에 이런 느낌을 주는 달항아리가 몇이나 되겠는가?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한 희뫼의 달항아리는 탁월한 조형성으로 그를 당대에 일가를 이룬 특별한 작가이게 한다.
“부지런해도 1년에 두세 번 불 때기 어려워. 평생 불을 몇 번이나 땔 수 있것어. 몇 대가 이어져야만 우주의 깊은 맛을 이해하고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들 수 있을 거야. 다음에 올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준비해 두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여!”. 그는 깊은 산중에서 조용히 온 힘을 다해 그릇을 빚고 가마와 밀당하며 인생사 잡다한 이야기를 버무려 귀하고 멋진 달항아리를 굽는다./화가, 칼럼니스트 김스미
지면 : 2025-02-06 7면
http://sjbnews.com/840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