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1월 20일 14시06분
전주 갤러리 한옥서 유미나 첫 개인전
이번 전시회는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들이 그려 궁궐의 한곳을 화려하게 장식했을 화조도와 사대부의 서재에 걸려있을 법한 책가도들, 귀부인의 안방에 어울릴 화접도들, 그리고 옛 그림들을 소재로 한 창작 그림들도 전시한다.
조선시대 채색화들에는 삶의 고단함과 슬픔은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고 온통 화사한 꽃들과 쌍을 이룬 나비들, 새들로 가득하다. 비루하고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이토록 밝기만한 그림을 그려 걸어두고 보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이 현실에서 얻기 힘든 행복을 얼마나 소망했었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풍요를 상징하는 꽃, 장수를 상징하는 나비, 부부의 좋은 금슬을 상징하는 새로 그림을 채워나가면서 몇백년 전 사람들의 마음과 지금 우리의 마음이 다를 바 없다고, 오히려 지금이 더 소망이 필요한 때이다.
고풍스러운 옛 그림을 本으로 하여 투명한 순지 아래에 놓고 먹으로 本그림의 선을 딴다. 먹그림이 완성된 순지에 아교와 백반으로 반수 처리를 하고 치자열매와 오리나무열매를 우려낸 물로 곱게 염색을 한 후 종이가 완전히 마른 다음 다림질로 구김을 펴면 채색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
먼저 흰색을 칠하고, 연한 색부터 진한 색까지 차례로 모든 부분을 채우면 이제는 ‘바림’을 해야 한다. 꽃잎 하나하나, 잎사귀 하나하나, 새의 깃털, 나비의 날개, 물결, 구름, 산의 모든 봉우리.... 그림의 모든 부분에 바림을 하여 입체감을 주고 필요한 부분은 몇 번씩 더 바림을 해주면 그림 속 모든 개체들이 종이에서 튀어나올 듯 살아나고 분명해진다. 그 후에는 마무리 단계로 땅의 잔잔한 풀들과 나무의 이끼들과 동물의 발톱과 눈동자를 진하게 그려주면 그림이 완성된다!
편의상 ‘민화’라고 부르고 있지만 사실은 정교한 전통채색화이기도 한 이 그림들은 시작해서 마무리를 할 때까지 쉬운 작업이 없고 매 순간 정성을 다 해야 하는 까닭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물론 그림을 그리면서 겪는 체력적, 정신적인 피로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종이 위에 그림의 윤곽이 살아나고 색이 채워지고 바림을 겹겹히 하며 꽃이 피고 새와 나비가 날아드는 그림의 완성품은 언제나 작가를 행복하고 충만하게 만든다.
작가는 "‘연못 속 봄풀들이 아직 꿈에서 깨지도 못했는데 뜰 앞의 오동잎은 이미 가을을 알리네’ 송나라 학자 주희의 싯구처럼, 올 한해도 시작인가 싶었는데 벌써 가을의 끝 무렵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민화로 시작하고 전통 채색화를 그리면서 조심스럽게 창작도 시도해보고 있는 나의 그림인생은 이제 막 시작된 봄처럼 새로우니, 그림을 그리며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빨리 흘러가도 아쉽지 않다. 여름처럼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마침내 가을처럼 풍성한 결실을 맺으리라 기대하며 매 순간 행복하고 충만하게 그림을 그리려 한다"고 했다./이종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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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1-2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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