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1월 11일 08시08분
바얀자그에서 우리가 만났잖아요? 미래를 기억하자
[책마주보기]김연수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하채현)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남해의 섬에서 정현이 만난 손유미, 대학극단에서 함께 활동했던 혜진, 지금은 인디 가수가 된 희진과 함께 20년 전 갔던 일본의 작은 카페 이야기, '사랑의 단상 2014' 세월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연수는 끝없이 노래한다. 희망. 사랑을. 이토록 줄기차게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는 김연수의 힘이 놀랍다. 그리고 마침내, 2100년 바르바라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사랑과 희망을 노래하는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은 후, 나는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김연수를 읽는 사람과 김연수를 안 읽는 사람.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고, 게으르며,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다고 느낄 때 김연수를 읽을 수 없다. 반면에 궁금한 게 있고 너무 무기력하지 않으며, 책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김연수를 읽는다. 나는 읽었다.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원더보이', '세계의 끝 여자친구'. 그리고 나는 못 읽었다.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꾿빠이, 이상', '밤은 노래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책을 샀고 책장에 두었는데 끝까지 다 읽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펼쳐보고,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실은 끝까지 못 읽었다. 내게 김연수의 문장은 수준 이상으로 느껴진다. 아니면 그냥 한국어보다 세련된 한국어로 느껴지는지 모른다. 작가 김연수는 늘 나보다 많이 읽는 사람이고, 읽은 것을 자신의 문장으로 다시 쓰는 사람이라서 적게 읽고 사는 나는 정독해 읽어도 어려울 때가 있다.
한 번도 소설가 김연수를 본 적이 없다. 김연수 작가 특강에도 못 가봤다. 딱 한 번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게스트로 나와 이야기하는 김연수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때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출간한 직후였을 것 같다. 내게 김연수는 만나고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작가다. 내게 김연수는 읽을 수 있기도 하고 읽을 수 없기도 한 작가인 것처럼. 읽을 수 없는 김연수의 책들을 부여잡고 나는 생각하곤 한다. ‘소설이라면 이 정도로 어려워야지.’
장편작가 김연수가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출간하자, 오랜만의 소설집이라고들 했다. ‘오랫동안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쓰고 싶은 게 없을 때는 쓸 수 없다. 그러다가 2020년이 되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휩쓸고 나자 뭔가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작가의 말)’라고 했지만, 김연수는 본래의 장편이 아닌 단편을 썼다. 나는 그 점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코로나로 누구는 책 볼 시간이 늘어서 더 장수가 많은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김연수는 달랐다. 만날 수 있고 손잡을 수 있을 때 김연수는 긴 이야기를 쓸 수 없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단편을 썼을 수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2100년이 코앞이다. 우리가 2100년 비얀자그에서 만났잖아요? 기억나시죠? 모래폭풍 말이에요.
하채현 작가는
생태에세이 '수수에게 들키다' 저자
군산대 인문도시센터 공동연구원
출판그룹상상 기획위원
지면 : 2024-11-12 7면
http://sjbnews.com/832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