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1월 04일 14시30분
[경제와 미래]철학 기반 과학·기술, 인문학 기반 정치·경제
한 가지씩 알아보자. 과학기술은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가? 새로운 법칙을 찾아내고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는 능력이 기본이다. 그렇게 하려면 자연과 세계를 전체적인 연관성으로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 그 눈을 뜨게 하는 것이 인문학이고 철학이다. 철학은 기본적으로 ‘전체적인 연관성’을 공부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철학이 기본이라는 말이다. 철학의 기초가 없이 과학연구를 하면 분과학문의 늪에 빠져 사람과 자연의 전체를 보지 못하게 된다. 우물 속에서 하늘을 보는 격이 되는 것이다. 근대 이후, 분과 학문들은 자기 분야만 최고라고 우쭐대고, 자기가 한 연구만 진리라고 내세우며, 지적으로 오만해지고 때로는 전투적 상태가 되었다. 대학의 연구실을 벌집으로 비유한다. 벌들은 자기 구멍만 들락거린다. 함께 있는 것 같지만 다른 분야와 교류하지 않는다는 비유다. 여기서 배출한 전문가들은 ‘직역(職域) 이기주의’ 집단으로 변모한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과학기술을 지원하는 정부는 연구비를 주며 단기(1년) 성과만을 재촉한다. 어떻게 1년 안에 신기술과 새로운 이론이 나오겠는가? 그러니 논문을 위한 논문만 생산하게 되는 것이다. 1년짜리 연구도 있고 10년 이상의 연구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연구과제를 발주할 때도 그렇다. 발주 분야에 관한 과거의 연구 경력을 요구한다. 자신이 그때까지 연구한 분야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되는 이유다.
경제를 운영하는 것도 그렇다.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양극화다. 고루 잘 살게 해야 하는데 빈익빈, 부익부로 갈라진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 모두의 문제라는 것은 이미 증명된 사실이다. 실질적 삶을 보지 않고 숫자로 표시된 경제지표만 보기 때문이다. 경제는 국민 개개인과 그 가족의 현실적 삶을 좋게 하려는 것이 기본 목적이다. “국민을 위한 나라”가 아닌가?
정치도 그렇다. 국민이 투표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고, 각급 대표자와 의원을 뽑는 것을 민주주의의 완성으로 보는데, 이것은 뒤떨어진 근대적인 관점이다. 형식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완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변화무쌍한 사회변동 과정에서 국민 개개인은 절실한 정치적 의사를 반영할 길이 막혀있다. 선출된 대표자들은 위임받은 권력을 자신의 보호막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행복과 권력을 누리는 집단으로 변질된다. 오늘날 누리그물의 수단들이 발전하여 개개인이 의사 표현할 길이 열려 있다. 그렇지만 권력의 자기보호막을 걷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개인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여 정책과 제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선출한 대표자를 쉽게 교체할 수 있게 하는 실질적 민주주의로의 제도개혁을 해야 한다.
물론 철학, 나아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문제가 있다. 자기가 공부하는 좁은 영역만이 진리라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참된 철학이 아니다. 오늘날 철학이 없는 철학 교수, 인문학 기초가 없는 인문학자가 많은 것도 우리 사회의 문제이다. 철학자, 인문학자들부터 자기의 담을 넘어 여러 학문 분야와 다양한 세계를 돌아보아야 한다. 새로운 법칙이나 새로운 사실을 찾아내지 못하면 지적 식민지 상태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남이 해 놓은 연구를 배우고 따라 하기만 한다면 영원한 이류국가로 머물고 만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에 깔려있는 문제다. 진정한 철학, 진정한 인문학을 살려야 하는 이유다. 그것을 기반으로 사회가 돌아가야 한다.
/김도종 (사)한국 소프트웨어 기술인협회 이사장. (전) 원광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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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1-05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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