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복정권 - 2024년 11월 04일 12시39분
“한국적인 도시 전북을 빛낼 수 있어 고된 줄도 몰라”
<새전북이 만난 사람>주영희 주리화 한복 대표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개막식 드레스 코드 두루마기 디자인
수많은 해외 바이어에 깊은 인상… 성공적 행사개최 신호탄
지난해 시니어코리아 참가자들 옷고름 매며 자원봉사 눈길
지난달 22일부터 전주에서 제22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가 열렸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경제인, 바이어, 전북 기업인 등 3,000여 명이 대거 참가했다. 대회 출범 이래 처음으로 대학 캠퍼스에 마련된 거대 텐트식 기업전시관에 320여 개 기업 홍보부스에서 활발한 상담과 계약도 이뤄졌다.
이런 성과와 함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개막식 드레스 코드인 두루마기였다. 대회의 성격과 가장 잘 어울리면서 성공적 개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주인공은 두루마기를 디자인한 한복디자이너 주영희 주리화 한복 대표다. 주 대표의 이번 행사 참여 소감을 들어봤다.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는 첫날부터 도내 4개 기업이 멕시코 등 4개국과 600만 달러 규모 수출 계약을 성사했고, 마지막 날에는 대회 사상 단일 최다 금액인 5,000만 달러 규모 수출 계약이 성사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전북의 경제영토를 세계로 넓힌’ 뜻깊은 대회였다는 평가다.
이런 성과 외에 이번 대회는 “‘가장 한국적인 도시’다운 행사였다”라는 평가다. 개막식 당일 만찬상에는 맛의 고장 전북의 색깔을 살린 한 상이 차려졌다. 비빔밥은 물론 떡갈비와 오색전 같은 9가지 음식이 상에 올랐다. 모든 음식 재료는 장수 한우와 순창 고추장 등 14개 시군의 특산물이 쓰여 의미를 더했다.
만찬의 의미를 더할 건배주로는 전주 이강주와 무주 머루와인, 정읍 청명주가 올랐다. 가야랑 자매의 신명 나는 가야금연주도 흥을 더했다.
그러나 이 대회를 가장 빛낸 건 개막식 드레스 코드인 두루마기라는데 이견이 없다. 예향(藝鄕)의 명성을 살리자며 주최 측이 마련한 두루마기는 개막식 참석자 1,000여 명의 탄성을 자아냈다. 행사 때 입은 두루마기를 아예 사겠다는 참석자도 많았다.
“제 고향 전주에서 열리는 뜻깊은 행사에 멀리 해외에서 오신 바이어와 내빈 1,000여 명이 고운 한복 두루마기를 함께 입고 있으면 너무나 아름답고 황홀할 것 같아서 고된 줄도 모르고 옷을 지었습니다”
두루마기를 디자인한 한복디자이너 주영희 주리화 한복 대표의 말이다.
주 대표가 두루마기를 디자인한 것은 대회 세 달여 전 전북도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가장 한국적인 도시에서 열리는 대회를 빛내고, 많은 해외 바이어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자’며 김관영 지사가 제안한 것이 두루마기다.
하지만 전북도의 제안은 한복을 입히자는 외에 구체적이지 못했다. 1,000벌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같은 두루마기를 입힐지 아니면 쾌자나 답호 같은 두루마기 느낌이 나는 옷을 입힐지도 정하지 못했다. “설령 이 세 가지 옷이라 해도 한꺼번에 1,000벌의 옷을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행사 때 대여하겠다고 옷을 만들어 놓을 일이 없잖아요” 더구나 예산도 넉넉지 않았지만 고민 끝에 아예 독창적으로 디자인해서 1,000벌을 짓기로 했다.
“해외에서 오신 바이어들이 입을 옷인데 이것저것 끌어모아 입힐 수는 없더라”는 게 주 대표의 회고. 기왕에 짓는 거 최고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다. 주 대표는 그간의 경험으로 각자 마음에 드는 색깔이 다른 만큼 은은한 파스텔 색조의 20가지의 색상으로 옷을 지었다.
행사 당일 두루마기를 입은 내빈 모두가 가장 좋아하고, 어울리는 옷을 입었다며 만족해한 이유다.
개막식은 1,000벌의 한복 두루마기가 연출해낸 장관이었다. 옷을 챙겨입은 내빈들은 눈치 볼 것도 없이 기념사진 찍기에 바빴다. 재외동포청장의 개막선언, 한덕수 국무총리의 축사, 김관영 지사의 환영사가 이어지면서 연단에 오르내릴 때마다 “어울린다”라고 이구동성이었다.
주 대표는 평상시 두루마기를 자주 입을 기회가 없는 내빈을 위해 옷고름을 매고, 매무새를 단장하는 데 도움을 줄 자원봉사자를 모았다. 자원봉사는 지난해 새전북신문이 주최한 ‘시니어코리아’ 참가자 12명이 나섰다. 고운 당의를 차려입고, 옷고름 매는 사전 훈련까지 했다.
자원봉사를 주선한 시니어코리아 선 입상자 송은미 씨는 “한복 명인인 주영희 디자이너가 만든 당의를 입고, 내빈이 입을 두루마기 착용을 도울 수 있어 자랑스러웠다”라고 말한다.
두루마기를 디자인하고 옷을 지어낸 주 대표는 지난 2021년 한복 명인으로 선정됐다. 명인은 20년 이상 이 분야에서 일한 경력과 작품 수준, 활동 경력은 물론 전통을 제대로 전승받았는지, 예술인의 품성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예총이 인증한다. 명문 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5년여를 일했지만, 옷 짓는 일이 즐거워 30년 전인 1994년 한복 디자인 점을 낸 뒤 일궈낸 성과다.
주 대표는 혼례복과 회갑 옷은 물론 한지로 만든 생활한복까지 직접 디자인하고 지을 뿐 아니라 황원삼, 홍원삼, 홍룡포, 도포 같은 궁중복식까지 바느질을 재현해낸 그야말로 한복 디자인계의 독보적 인물이다.
2017년에는 70여 년 미스코리아 역사에서 처음으로 전북대회 참가자에게 한복 드레스를 직접 디자인하고 지어 입히기도 했다. 춘향 선발대회와 KBS 드라마 ‘해신’을 비롯한 여러 드라마와 여러 영상 콘텐츠에 의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행사가 끝난 뒤 정작 주 대표는 걱정이 많다. ‘제대로 지은’ 1,000벌의 두루마기가 고스란히 남았다. 크고 작은 행사에 대여할 계획이지만 경제적으로 따져서는 부담이 크다.
주영희 대표는 “전북에서 열리는 대회가 성공해야 한다며 옷감을 저렴하게 주신 분, 3개월여 밤새워 옷을 지은 재봉사들의 헌신과 배려 없이는 이룰 수 없었던 일”이라며 공을 돌린다.
전북을 바꾸는 힘! 새전북신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지면 : 2024-11-05 16면
http://sjbnews.com/83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