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0월 28일 15시56분
[아침발걸음]이리역, 장점마을 11월의 참사를 기억합시다
며칠 전 2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희생자 2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은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눈물과 애환의 산증인들이 있다. 가족을 잃고 평생을 고통스러운 멍에를 메고 살아가야 하는 4월의 세월호, 10월의 이태원, 또 수없이 많은 사회적 참사의 피해자들이 그분들이다. 더 이상 이 나라에 이러한 불행이 반복되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대한민국 역사에 기록된 최대 참사가 2차례나 발생했었다.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고 중 하나였던 1977년 11월 11일 이리역 폭발사고, 2018년 11월 14일 대한민국 최초로 환경재난에 대한 인과관계가 인정된 함라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 사건이다.
이리역 폭발사고는 다이너마이트 914상자 22톤, 초안폭약 100상자 2톤, 도화선 1톤 등의 폭발물을 싣고 정차해있던 한국화약주식회사 화약 열차가 폭발한 사건이다. 사고 지점엔 깊이가 15m, 직경 30m의 큰 구덩이가 생겼고 역 반경 8km 이내까지 큰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선로 옆 창인동 전체 가구 43%가 붕괴되었다.
1400여 명의 부상자와 59명의 사망자가 확인되었는데 신원이 밝혀지지 않는 이들은 사망자 숫자에서 제외되었다. 당시 이리는 철도교통이 발달해 많은 타지인들이 머물다 가던 곳이었고 역 바로 옆 홍등가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들이 있었는데 세상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올해 3월에는 SBS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1977 사라진 도시와 맨발의 남자’라는 부제로 이리역 폭발사고를 조명하여 방송하기도 했다.
함라 장점마을 집단 암 집단 발병은 환경참사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원인이 규명되고 인정한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이다. 마을 인근 함라산 초입에 2001년부터 영업한 비료공장은 KT&G로부터 담배찌거기 폐기물인 연초박을 받아 부숙하여 퇴비를 생산하고, 다른 폐기물은 가열, 건조하는 방식으로 혼합유기질 비료를 생산하는 업체였다.
그런데 퇴비용 연초박을 불법으로 고온 건조공정으로 비료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배출된 각종 발암물질이 마을에 영향을 준 것이다. 2018년 환경부 역학조사 결과 발표 당시 기준으로 주민 90여명 가운데 33명이 간암, 피부암, 담도암 등 암에 걸렸고 이 가운데 17명이 숨진 상황이었다.
이 일들은 제대로 기억되고 있을까? 이리역 폭발사고가 발생하고 14일 만인 11월 25일 ‘새이리종합개발계획’이 발표되고 일사천리로 복구작업이 진행되면서 결국 남은 건 곳곳에 ‘박정희 각하 감사합니다’ 현수막들과 ‘새이리건설’ 구호뿐인 상황이 되었다. 국가적으로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바랄 수도 없는 수준이고, 그렇다면 자치단체 차원의 노력은 어떠한가?
익산시가 이리역 폭발사고를 기억하는 방법은 매우 부끄러운 수준이다. 익산역 안쪽에 외롭게 설치되어 있는 추모탑의 존재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고 익산시 차원에서는 30주기, 40주기에 추모 행사를 진행했을 뿐이다. 자치단체의 공식 기록물이 전무한 상황에서 2017년 필자가 익산시의회에서 강력하게 제안하여 40년 만에 처음 ‘이리역 폭발사고 시민백서’가 작성되어 남아있다.
이런 와중에 민간차원에서 이다은소리꾼은 매년 11월 11일을 '익산 치유와 도전愛 날'로 선포하고 2018년부터 8년째 공연을 열어 통해 공동체의 아픔을 노래하며 기억하고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함라 장점마을의 경우 주민과 시민사회의 요구와는 달리 익산시는 줄곧 비료공장 건물 전체를 철거해야 한다고 일관된 입장을 취하며 아픈 기억을 지우려고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현재 비료공장 건축물 일부를 남기는 방식으로 생태환경 교육 공간으로 조성이 추진되고 있다. 향후 비료공장 부지를 환경교육, 문화예술, 기억의 공간으로 조성하고 4.16 교실과 같이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회적 참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추모하고 승화시키는 일은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작점이다.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는 행위를 통해 사회 전체를 치유하고 긍정의 전환을 위한 기재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임형택(Like익산포럼 대표, 제7,8대 익산시의원, 조국혁신당 전북도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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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0-29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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