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0월 25일 20시04분
[메아리]권력의 폭력성, 그리고 5.18의 세계화
한강은 권력의 폭력성의 피해자이자 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고발자이기도 하다. 한강이라는 소설가를 통해 우리는 권력의 폭력성의 극복과 승화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를 곱씹게 된다.
우리는 소설가 한강이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국가폭력의 피해자라는 사실에 당혹감과 함께 분노를 느낀다. 세계가 인정한 문학의 결실이 권력의 폭력이라는 암막(暗幕)에 질식해 있었다는 사실은 권력의 폭력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사람을 해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민주공화국은 말하고 쓰고, 보도할 자유의 토대 위에서만 훼손되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그렇기에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윤석열 정부의 ‘방송심의’를 빙자한 ‘언론검열’은 민주공화국에 대한 심대한 도전이자 폭력이다.
한강은 소설에서 ‘폭력과 인간성’을 다룬다. 일상의 삶 속에서 가해지는 폭력에서부터 권력의 폭력성까지 모든 폭력을 고발한다. 그러면서 한강 작가의 말처럼 광범위한 인간성의 스펙트럼을 고민하게 한다. 5.18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는 그 고발과 인간성 승화의 응축물이자 역작이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에서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고 말한다. 여전히 광주 5.18을 헐뜯고 왜곡하는 이들의 폭력에 대한 신랄한 꾸짖음이다. 끊임없는 성찰의 촉구다.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의미는 폭력성 극복을 통한 인간성 회복의 열렬한 희구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증언, 기억, 고귀함’의 메시지를 던진다. ‘증언’은 5.18의 참혹함을 겪고 살아남은 이들의 고통스러운 책무다. '소년이 온다'는 5.18 실화에 바탕을 둔 생생한 증언록이다. ‘기억’은 우리들의 몫이다. 상처와 트라우마를 헤집는 고통을 이겨내고 용기를 짜내 5.18의 진실을 증언했던 이들에 대해 가져야 할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들의 책무다.
작가가 끝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고귀함’이다. 역사의 비극 속에서, 학살의 공포 속에서도 빛났던 인간성의 고귀함!
주인공 동호가 왜 태극기로 시신을 감싸느냐고, 애국가는 왜 부르는 거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나중에 이 장면을 떠올리며 선주는 답한다.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이 대목에서 인간성의 고귀함을 생각하며 전율했다.
소설 속 증언, 기억, 고귀함은 5.18에 한정되지 않는다. 청계피복노조의 쟁의 현장, 2009년 용산참사 현장, 출판물 검열, 그리고 체르노빌 방사능 사고까지. 소설가 한강은 모든 탄압과 비극, 억압과 투쟁의 공간에서 증언, 기억, 고귀함이 존재해야 함을 일깨운다.
1971년 칠레의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시로 중남미의 역사를 알리고 칠레 피노체트 군부독재정권을 고발했다. 네루다의 시를 통해 태평양 저 멀리 칠레의 문제가 세계화됐다.
네루다는 시에서 말한다. 『내 이름이 라미레스, 무노스, 페레스, 페르난데스, 알바레스, 누네스, 타피아, 로페스, 콘트라레스, 나는 죽은 모든 이의 친척이며 민중이다』
우리는 이 시에서 거명된 이름이 누구인지 모른다. 한강의 소설 속 동호, 선주, 진수, 은숙, 성희, 정대, 정미, 영재. 이 이름들을 접한 세계의 사람들은 이들이 누구인지 모를 것이다.
세계는 증언, 기억, 고귀함으로 그들을 접할 것이다. 증언, 기억, 고귀함은 모든 억압과 항거가 있는 곳의 세계 공통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5.18의 세계화가 시작됐다.
/정동영(더불어민주당 전주시병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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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0-2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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