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0월 21일 07시55분
사소함의 역설
[책마주보기]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김혜영)
클레어 키건은 수녀원의 막달레나 세탁소에 감금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여자들과 아이들의 문제를 소환한다. 저자는 ‘빌 펄롱’을 통해 부당한 일을 방관하지 않는 인간을 그려낸다. 동시에 불의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단란한 가정이 파괴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그 불안으로부터 도망치려는 펄롱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그려냄으로써 선택의 기점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인물의 내면을 치밀하게 묘사한다. 즉, 사회공동체의 추악한 비밀과 맞닥뜨린 한 인간의 실존적 고민과 삶의 본질을 화두로 던진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빌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갔다가 창고에서 여자아이들을 보게 된다. 까마귀 떼가 있는 그곳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으나 그는 강으로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는 여자아이의 부탁을 외면하고 만다. 석연찮은 마음으로 돌아오는 길에 선지자 같은 노인을 만나게 되고 노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어디든 본인이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며 길을 가리키는 노인의 말에서 앞으로 펼쳐질 펄롱의 행동에 대한 암시를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불의에 침묵할 것인지 용기를 낼 것인지 위태로운 갈림길에서 갈등하던 펄롱은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불안과 동시에 전율을 느낀다. 결국 그는 소녀를 탈출시킨다. 자칫 자신이 이룬 행복한 가정과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낸 것이다. 그것은 저자가 놓지 않은 인간 세상에 대한 희망이며 사랑이기도 하다. 특히, 이 소설의 제재인 강은 ‘건너편 위풍당당한 수녀원’을 가로지르는 물리적 장애물이면서 소녀에게는 생의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물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그것을 에둘러 가든 넘어서든 흘러가는 속성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펄롱은 소녀와 함께 걸으면서 어머니와 자신을 거두어주었던 미시지 윌슨의 친절을 소환하고 사소한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나간 일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감사할 줄 아는 인물, 펄롱을 통해 작가는 사소한 것에 대한 감사에서 멀어져 있는 것은 아닌지, 탐욕에 눈이 먼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소설 속 소녀가 수녀원 문밖으로 나오자 구토를 한 것처럼 탐욕이라는 인간 본성을 게워 내고, 펄롱이 “자신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는 기쁨”을 알아채길 바랐을 것이다. 무심함에 보지 못했던 사소한 것들을 발견하고,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부끄러움과 마주한다면 ‘사소하지만은 않은 것들’은 오늘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미래를 바꿔 놓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각들이 마지막 장을 덮는 독자에게 묵직한 역설의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김혜영 작가는 2018년 ‘수필과비평’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부안학생교육문화관 독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지면 : 2024-10-2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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