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10월 10일 10시43분
[금요수필]늦은 대학 생활
정남숙
우리나라도 이제는 다국적 국가가 되어 외국인들이 많아졌고, 그들도 우리나라 사람 이상으로 한글을 구사하고 있는데, 나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국어 정도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어를 배울 곳은 많다. 눈에 띄는 곳마다 외국어 학원이다. 한자 사범과 훈장 과정을 이미 마쳤고, 번체자와 간체자를 익혔으니, 먼저 중국어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욕심이 생겼다. 이왕 배울 바엔 젊은이들과 더불어 정규교육에서 경쟁하고 싶었다. 마음에서 행동으로 옮기는데 몇 학기를 보내고, 작년 가을 학기 도전의 첫발을 내디뎠다.
내가 공부할 상아탑은 우리 지역 국립대학교, 정문 앞에 ‘거점 국립대 대학평가 2위’ 안내판이 자랑스럽게 나를 반겼다. 등교 요일과 시간표까지 자세한 내용을 동봉한 안내서를 받아 들고, 첫 등교 일에 허둥대지 않으려고 줄달음에 강의 동을 찾아 사전 답사까지 했다. 첫날 일찍 등교하여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젊고 싱싱한 젊은이들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두근대는 마음을 다독이며 ‘나는 할 수 있다’ 용기를 내봤지만, 위축된 내 모습이 교수의 눈에 보였나 보다. 어색하지 않도록 신경 써주시는 아가씨 같은 교수님으로 인해 쉽게 안정감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학생회관에서 교재도 구입하고, 행정실에서 주차권도 발급받았다. 정문을 드나들 때 ‘정기 차량’ 문자에 자동으로 가림 막대가 오르는 것도 기분 좋았다. 나의 대학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독일어식 발음기호는 어렵지 않았으나, 발성과 성조가 익혀지질 않아 손자 같은 젊은이들 앞에 망신이나 당하지 않을지 자신이 없다. 괜히 시작했나 후회가 앞선다. 그러나 시간마다 교과서 수업 전에 보너스로 알려주는 ‘한마디 중국어’ 중,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를 칠판에 써놓으신 교수님은, 나를 바라보며 “정 선생님은 이글 뜻 아시죠?” 한다. 젊은 학생들 앞에 나의 실력을 인정해 주신 것이다.
봄 학기를 맞았다. 이제는 남녀학생 구분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동급생으로 인정해 주니 나도 먼저 인사를 나눈다. 중간고사 사전 필기 모의시험을 봤다. 스크린에 문제를 내고 받아쓰는 시험이다. 정답을 확인해 보니 25문제 중 1~2개가 헷갈렸다. 그동안 단어와 본문은 물론 연습문제, 핵심 표현까지 교제를 통채로 옮겨 써보고 풀어보았으니, 교수님 강의도 귀에 쏙쏙 들어와, 중간고사에는 만점 맞을 자신이 생겼다. 중국어를 마스터하고, 영어와 일본어에 도전하리라. 많은 알곡 중에 섞여 있는 하나의 뉘 같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캔버스를 누비고 있다. 비록 늦었지만, 상아탑의 일원인 대학생인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정남숙 수필가는
'대한문학’ 수필 등단
수필집: ‘노을을 닮고 싶다’ ‘난 아직도 꿈을 꾼다', ‘역사의 마당에서 전통이랑 놀아보자’
'대한문학 작가상’, 한국문인협회 선정 ‘올해의 수필인 상’ 수상
전북문인협회, 전북수필, 행촌수필, 은빛수필 회원. 국립전주박물관, 전주기독교역사기념관 문화해설사
지면 : 2024-10-11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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