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10월 03일 14시11분
[전북의 창]권토중래(捲土重來)의 땅, 부안 그리고 격포 행궁
조선시대에 행궁은 강화도, 남한산성, 북한산성, 온양, 화성[수원]을 비롯하여 이동하는 동안 잠시 쉬는 주정소(晝停所)에 사용된 용어이다. 이러한 행궁은 설치 목적에 따라 전란 대비(戰亂對備), 휴양(休養), 능행(陵幸) 등을 위한 시설로 구분할 수 있다. 격포 행궁은 강화도 행궁, 남한산성 행궁, 북한산성 행궁과 함께 전란 대비용 행궁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강화도 행궁은 이미 고려시대 대몽고 항쟁기 그 역할을 수행하였고 조선시대에도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도 병자호란 당시 이곳에서 45일간의 전쟁을 치렀으며, 북한산성 행궁은 1711년(숙종 37)에 한양도성의 방위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그런데 강화도, 남한산성, 북한산성의 행궁과는 달리 격포 행궁은 전라도에 건립되었다. 1640년(인조 18)에 건립되었는데 이 시기는 병자호란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일행이 심양에 볼모로 있었던 시기이다. 소현세자 일행은 병자호란 이후 강화 조건에 따라 1637년 2월 5일 도성을 떠나 1644년 환국할 때까지 심양에 있었다. 이런 때에 경기 밖 삼남지역에 행궁을 조성한다는 것은 청나라와 관계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병자호란 이후 1637년 3월 신풍부원군(新豐府院君) 장유(張維)는 며느리가 잡혀갔다가 속환되어 친정집에 와 있는데 제사를 받들게 할 수 없다며 이혼을 허락해 달라는 단자를 올렸는가 하면, 6월에는 심양에 배종한 삼학사(三學士) 윤집(尹集, 1606~1637), 오달제(吳達濟, 1609~1637), 홍익한(洪翼漢, 1586~1637) 등이 죽임을 당했다고 보고되었다. 그리고 11월에 이경석(李景奭)은 삼전도비(三田渡碑)의 글을 지었다. 조선 사회가 청나라와 관련된 일로 들썩이고 있었다. 더욱이 청나라는 조선에서 철군하면서 지속적으로 군사 징발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명나라와의 군신명분(君臣名分)과 재조지은(再造之恩)의 의리를 저버릴 수도 없었다. 신하들의 청나라의 군사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도 계속 이어졌다. 그러던 1639년(인조 17) 7월 청나라는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조선 왕의 입조(入朝)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이성구는 “한 번 입조해서 별일이 없었다 하더라도 해마다 입조하게 한다면 어떻게 처리하겠습니까.”라고 우려를 표하였다. 입조했을 때 무슨 해괴한 일을 당할 지도 예측할 수 없었다. 이러한 우려와 근심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논의에 이르렀다. 이런 논의는 청나라의 사신의 귀에 들어가거나 백성들에게 알려져서는 안되는 문제였다. 이에 최명길은 “입시한 사람들은 모두 사리를 아는 사람들이니, 비록 지친(至親) 사이라도 말하지 말도록 하시오.”하고 함구할 것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때마침 심양에 다녀왔던 박황은 심양에 있을 때에 범문정(范文程)이 한 말을 전했는데,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나왔을 때 아들로 바꿔 세우지 않은 것을 후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즈음 승지 이경의(李敬義)는 상소를 올려 청나라와의 관계를 끊을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청나라에 바치는 공물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였던 것은 세자가 무사히 환국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인조의 청나라 입조 요구에 대해서는 절대 응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강화도에 들어가 머무는 것에 대해서 ‘사방을 돌아보아도 아득하게 푸른 바다만 보이는 조그만 섬에 의지하는 것’이니 상책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의 발언은 호남 지역의 관방체제 변화로 이어졌다. 그 대책은 강화도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연안과 해주, 남쪽으로는 부안 변산에 각각 대진(大鎭)을 세우고 서로 흐응하게 하고, 부안 변산은 나주와 영암과 호응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게 하는 것, 혹시 청나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에 최후의 보루, 부안 변산을 조선의 ‘진양(晉陽)’으로 삼고자 한 것이었다. ‘진양’은 전국시대 진나라 대부 조간자가 윤탁을 시켜 다스리게 한 곳으로 ‘권토중래(捲土重來)’할 수 있는 근거지이었다. 그후 아들 조양자가 지백의 공격을 받았을 때 진양으로 대피하여 세력을 만회하고 지백을 멸망시킨 땅이었다. 즉 청나라와 관계가 최악으로 치닿게 되는 상황에서 권토중래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부안 변산에 격포행궁을 마련하였던 것이다. 격포행궁의 위치 및 규모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김철배(임실군청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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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10-0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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