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9월 10일 15시54분
[오늘과 내일]어휘력과 문해력의 위기
기억나는 한자로는 여리박빙(如履薄氷)인데 고3때 모의고사에 나온 것으로 기억한다. 얇은 얼음을 밟고 걷는 것처럼 위태하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의 지난 50년이 그랬던 것 같다. 또 하나는 매화(梅花)인데 본고사 때 이를 한자로 쓰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어쨌거나 우리나라 국어는 한문을 알면 알수록 좋다.
1980년 이후에 한문 시험도 없어지고 최근에는 순 한글로 사용한 것이 오래되었으니 어휘력과 문해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분이 방 앞에 多不有時(다불유시)라고 써 붙여놔서 궁금했었는데 WC, 화장실을 한자로 풀어 쓴 것은 오래된 귀여운 이야기다.
최근에는 초등학교 알림장에 우천시(雨天時)에는 행사를 연기한다고 했더니 우천시(市)가 어디 있느냐고 묻더란다. 어려운 한자 예를 들면 섭취·급여·일괄 등도 이해를 못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한다. 단어뿐만 아니라 맥락 파악도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당연하다. 한문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쉽게 한글로 풀어 써주는 수밖에 없다.
30여 년 전에 필자의 지도교수는 전공서적을 모두 한문으로 썼는데 영어보다도 더 읽기가 힘들었다. 다 읽어 줬다. 이런 지경에 심심(甚深)한 사과를 심심풀이 사과, 금일(今日)을 금요일(金曜日)로 이해하는 것은 귀여운 쪽에 속하지 않는가? 그러니 차도가 아닌 인도(人道)와 방글라데시가 아닌 인도(印度) 등의 한글을 어떻게 구분한단 말인가?
우리 큰아이가 4~5살 때 한글을 배우는데 ‘네모난‘을 ’네몬한’으로 쓴 적이 있어서 우리 부부는 이런 류의 대화를 우리끼리 종종하곤 한다. 오래된 이야기인데 6·25사변에 대해서 수필을 써오라고 하니 제목을 ‘유기오’, ‘육니오’, ‘625’ 등 여러 제목이 있었다. 유명한 물리학 교수님이 지각한 학생들한테 시말서(始末書, 경위서)를 써오라고 하니 제목을 ‘심왈서’, ‘심할서’, ‘심알서’, ‘심활서’ 등으로 써와서 박장대소를 하셨다고 한다.
김을파손(기물파손), 장례희망(장래희망), 수박겁탈기(수박겉핥기) 등도 동류이리라. 최근에는 영어 등의 외래어까지 혼합되어 이지적(理智的)을 ‘easy적’으로 해석한다고 하니 기발할 뿐이다. 그래도 이러한 실수 등이 제일 기발한 것은 시험지 채점할 때이다.
필자 자신도 30여 년 전 미국 유학 시, 시험 친 답안지를 가끔 보면 얼마나 급하고 답답했는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영어 문장이 동사가 없이 명사만 7개 이어 놨다. 과거인지 과거 분사인지 구분도 안 된다. 그래도 맞게 해주신 교수님께 감사한다. 거기다 외웠는데 기억까지 안 나면 정말로 미쳐버려서 다른 외운 문제를 써놓곤 한다. 물론 우리 학생들도 그러한 것을 100% 이해한다.
내 평생 가장 기발한 예를 들으라면 Goodyear를 들겠다. 우리 고분자(高分子)분야에서 굿이어는 고무가공 기술발명가이자 타이어회사이다. 노 교수님께서 점수를 주려고 쉬운 문제인 굿이어를 설명하라고 주셨다. 그런데 이 친구는 수업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바로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고 답을 썼단다. Goodyear가 이름보다는 Good morning!처럼 Good Year!라고 생각했으니 ‘좋은 해’라고는 할 수 없고, 좀 더 근사하게 유식하게 근하신년으로 의역하여 답을 하였으니! 이 친구는 필시 마누라·자식 고생은 안 시켰으리라! 교수님께서 점수를 후하게 줬다나 어쨌다나.
이 모든 것이 독서가 부족해서 온 것이다. 학생들의 독서량이 절대 부족하다. ppt, 유튜브, 틱톡, 쇼츠, 카톡, 챗GTP까지 이어지는 요즘 세대들에게 “책을 읽어 어휘력과 문해력을 높이라”고 하면 너무나 과분한 요구가 아닐까?
/강길선(교수, 전북대학교 고분자나노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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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9-1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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