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이종근 - 2024년 09월 09일 07시55분
엄마 해방일지
[책마주보기] 오한숙희의 '우리, 희나'(하채현)
이 책은 제목처럼 희나의 이야기지만 희나엄마 오한숙희 이야기기도 하다. 어쩌면 희나엄마가 희나를 키우면서 얻은 감동의 메시지 모음집인 것 같다. 뇌는 빛의 속도지만 말과 행동이 달팽이인 희나를 들들 볶았던 희나엄마가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한다. 이렇게 '우리, 희나'는 희나엄마표 반성문이다.
이제까지 엄마는 희나를 세상의 잣대에 맞추려고 다그치며 살아왔다. 당연하지. 모든 엄마가 아이를 달달 볶으며 산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 요렇게 하리니까, 왜 말을 안 듣니, 다 너를 위해서... 그런데 어느 순간 희나엄마가 세상의 잣대를 버렸다. 그리고 해방되었다. 세상의 잣대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고, 사실은 기울어지고 삐뚤어진 안 맞는 잣대였다. 희나는 희나로서 충분했다.
희나엄마가 세상의 잣대를 버리고 희나의 행동을 따라 해 보았다. 그처럼 희나다운 게 없더란다. 왜 몰랐을까? 희나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왜 믿어주지 못했을까? 희나가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긴장 푸는 자세를 취하는 희나. 그래도 되었다. 엄마도 희나처럼 해 본다. 그랬더니 알겠다. 왜 희나가 그랬는지 말이다. 모든 엄마가 바깥을 보지 말고 내 아이를 봐야 한다. 그리고 엄마가 아이의 행동을 따라 하며 깨달아야 한다.
어릴 적 희나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디자 희나엄마는 모두 엄마탓이라고 느낀다. 당연하다. 엄마들은 아이를 상대로 다들 죄인 취급당한다. 희나엄마는 도대체 어디에서 흠이 생겼는지 찾아내려고 애쓰며 자신을 괴롭혔다. 소용없었다. 그래서 “조금만 약해 보여도 무시하고 겁주는 세상에서 겁먹지 않기 위해 (나도) 두 주먹을 꼭 쥔다. 그리고 겁주려는 질문에 곧장 대응한다. ‘태교는 완벽했어요! 너무너무!!!’(85쪽)” 세상이 얼마나 나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조금이라도 다르면 상처를 주며 돌아서는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대목에서 나는 희나엄마를 따라 “태교는 완벽했어요!”를 외치며 울먹거렸다.
소소하게는, 전시되었던 희나의 작품집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책이다. 부드러운 하늘색 표지와 그림은 희나의 예술적 성취를 쏙 빼닮았다. 가운을 벗어 던진 7명의 의사 선생님, 오리지널 라면을 끓여주고 소주를 따라주는 서먼숙 이모 등 수두룩한 희나 용병들의 에피소드가 다정하고 따뜻하다. 이 용병들 덕분에 희나엄마는 “희나를 의심하며 바라볼 게 아니라 나를 의심하면서 희나를 바라보겠다(227쪽)”고 결심했는지 모른다. 이 결심이 희나엄마를 해방시킨 게 아닐까.
해방되지 못한 나의 경우, 세상이 왜 이토록 꽉 막혔는지 몹시 괴롭다. 나를 맴도는 어지러운 꿈으로 미간만 좁히다가 따뜻한 '우리, 희나'를 만났다. 어른은 크게 숨 쉬며 독특하고 해괴한 아이디어를 마구 꽃 피우고, 청년들은 온당한 이해 속에서 어설프고 엉뚱한 예술을 삶 속에 펼쳐내고, 아이들은 입시지옥 같은 나쁜 기운이 하나도 없어서 매일 뒹굴며 놀고, 생존 경쟁 없는 시니어클럽은 늙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뿌듯하고 평화로운 세상. 그것을 일구려는 의지가 '우리, 희나'에 들어 있었다.
'우리 희나'가 아니고 '우리, 희나'이다. 쉼표가 있다. 우리는 희나를 닮았고, 희나는 우리를 닮았다. 누구나 다르고 닮았다. 희나엄마는 “다정한 세상을 위하여!”라고 서명하여 건네주었다. 희나엄마의 해방일지는 지금보다 다정한 세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산에 피어도 꽃이고 들에 피어도 꽃이고 길가에 피어도 꽃이고 모두가 꽃인 세상, 아무 데나 피어도, 생긴 대로 피어도, 이름 없이 피어도 모두가 꽃인 세상을 위하여 희나엄마가 앞장선다.
하채현 작가는
생태에세이 '수수에게 들키다' 저자
출판그룹상상 기획위원
군산대학교 인문도시센터 공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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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9-1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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