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9월 04일 14시51분
[문화로(文華路)이야기 꽃]여행길
여행과 관광은 다르다. 여행은 새 경험을 찾거나, 자아의 성장, 색다른 탐험으로 자기를 세우려는 것이다.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고 유연하게 자기나름으로 경험을 찾는다. 그런데, 관광은 휴식이나 오락을 찾아서 유명한 곳을 찾아간다. 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데서 상품과 서비스를 즐긴다.
여행의 맛은 계획된 틀, 목적지, 일정을 정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 예상치 않던 경험, 길에서 만나는 새로운 정보, 기억에 남는 사람을 만나 즐긴다. 여행에서 얻는 기쁨의 깊이가 다르니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좀 더 오랜 시간 머물게된다. 그러는 사이에 그때 그곳 그 사람들의 일상 속에 스며들게 된다. 가끔씩은 오래 지속하면서 다양한 장소에서 경험 이상의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행은 다른 눈높이로 새것을 찾으려 애쓰다 보니 늘 새롭다. 새것을 만나면 번뜩 눈을 뜨게 된다. 공자나 석가모니가 여행을 다닌 것은 바로 이 새로운 눈높이와 깊이를 찾아 나선 것이라 본다.
공자가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닌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불가피한 떠돌이였는지 자발적인 추구였는지도 궁금하다. 사회문화적 이유에서 찾는다면 두 가지 모두가 해당될 것이다.
보편적으로는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만한 곳을 찾는 여정이었다고 안타깝게 본다. 예를 바탕으로 펼치는 이상적인 정치제도를 실천하려 했으나 자기 출신지인 노나라에서부터 뿌리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다른 나라로 가 사상과 이상을 함께 실현할 지도자를 찾았지만 그 여정은 계속될 수 밖에 없었다. 춘추전국시대의 정치 상황, 지배자 교체와 체제 불안, 권력투쟁으로 안정적인 거취확보 자체가 불안했다. 이 같은 당시 국제사회 배경을 감안한다면 공자의 유람은 여행이라기 보다 다른 용어로 설명해야 할 절실한 상황이었다. 여가개념에 덧칠할 수는 없는 정치적인 전환기 출구전략 실험이었다고 봐야겠다. 여행이라기 보다 각국을 전전한 것이다.
그 가운데 공자의 즐거움은 제자들과 동행을 즐긴 데서 그윽하다. 제자들과 함께 보낸 많은 시간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닌, 친밀한 교류와 배움의 시간이었다. 눈뜰 준비가 되어 있는 제자들과 대화로 지혜를 나누고, 서로 커가며(敎學相長) 공진화하는 재탄생의 즐거움이 매우 매우 컸을 것이다.
논어에서 여행의 "즐거움"으로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에서의 깨달음, 보고 듣는 새로운 배움이 대단했을 것이다. 자연 속을 여행하며 자연을 관찰하고, 거기서 인생의 진리를 깨닫곤 했다. 흐르는 강을 보며 “세상 모든 것이 물흐르듯 쉼 없이 지나감”(자한 16)을 가르친다. 나무를 보며 “싹은 텄지만 자라지 않고, 자라기는 했지만 열매를 못 맺은 경우”(자한 21)를 비유한다. “늦 봄에 봄옷차림으로 관 쓴이, 어린아이와 함께 목욕하고 바람 쐬며 노래하며 오고싶다”(선진 25)고 말한다.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일상적인 만남을 귀하게 여기고, 인생의 도를 깨닫고, 정신적 즐거움과 평안을 누리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이는 단순한 여행의 기쁨이 아니라, 깊이 있는 성찰과 도덕적 깨달음에서 오는 더 큰 만족감이기에 ‘생활문화의 철학적 가치’로 평가하고 싶다.
공자가 여행에서 즐긴 것은 사상가로서 정치사회 현장에서 자신의 사상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실증하고, 자신의 학문을 전파하려던 것이다. 더불어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이 요즘 식으로 필드트립을 하면서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을 지도하는 즐거움이었다.
그래 저래 관광 아닌 수련 여행길에서 공자의 많은 뜻은 다양한 상황 논리를 얼마나 뛰어넘었을까? 적용 가능성을 얼마나 검증했을까?
/이흥재(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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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9-05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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