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9월 02일 15시08분

[인문학 속 클래식]여행 속 클래식 vol.2 아프리카의 프랑스인, ‘생상’

“나를 비롯해 현존하는 어떤 사람도 생상처럼 그렇게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없다. 그는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악성이다.'”
-한스 폰 뷜로

여행 속 클래식의 두 번째 주인공은 낭만시대의 프랑스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 샤를 카미유 생상(Charles-Camille Saint-Saëns, 1835-1921)이다. 생상은 ‘동물의 사육제’, ‘백조’, ‘오르간 교향곡’ 등으로 유명한데 특히 ‘죽음의 무도’는 김연아 선수의 쇼트프로그램 배경음악과 얼마 전 열린 파리올림픽의 개회식에서 한국대표팀이 소개될 때 쓰인 배경음악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어릴 적 별명이 '부활한 모차르트'일 정도로 천재적 재능의 소유자였던 생상은 손꼽히는 여행 매니아였는데 그가 여생을 보내고 서거한 곳이 북아프리카의 프랑스령 알제리였던 것을 봐도 그가 얼마나 여행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천재성에 대해 좀 더 살펴보면 생상은 두 살 때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으며 세 살 때 작곡을 하고 일곱 살 때는 라틴어를 완전히 터득했다. 열 살엔 파리의 저명한 연주회장 살플레엘(Salle Pleyel)에서 첫 데뷔 연주회를 하였고 앵콜로 베토벤의 32개 소나타 중 무엇이든 연주해주겠다며 즉석에서 신청을 받았다고 하니 그 천재성은 정말 대단했다.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지휘자일뿐 아니라 음악학, 철학, 심리학, 천문학, 고고학 등 다방면으로 조예가 깊었다고 하는데 특히, 천문학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 프랑스 국립천문학회의 정회원이 될 정도였다. 주변에서 종종 자신의 전공이나 직업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 못지않게 조예가 깊은 사례들을 보게 되는데 클래식에선 생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생상이 살았던 19세기 후반의 유럽은 과학기술의 발달과 세계관의 확장으로 지식욕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세계 곳곳의 동물과 식물, 광물에 대한 탐험심, 그곳의 문화와 풍습에 대한 호기심,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갈망과 동경이 그 어느때보다 넘치던 시대였다. 생상은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을 책이나 구전에 의하기 보다는 그곳으로 직접 여행을 떠나 확인하고 체험하며 해소했다. 생상은 평생 27개국을 179차례나 방문했는데 그는 당시 세계 문화의 중심인 프랑스 파리에서도 제일의 작곡가였으며 일찍이 국제적 명성을 얻어 세계 각지에서 초청을 받아 잦은 연주 여행을 했다. 또한 순수한 여행 목적으로도 세계 각지를 방문했는데 특히 따뜻한 기후의 이집트, 알제리 등을 좋아했고 세계 각지에서 체험한 다양한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많은 예술적 영향들을 자신의 음악에 녹여 작품에 담았다.

자연스레 프랑스 음악의 바탕 위에 오리엔탈리즘과 튀르키, 아랍 등 다양한 지역의 악상들이 얹어져 생상의 천재성안에 용행되었으며 이는 생상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프리카',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카프리체 아라베', 피아노 협주곡 5번 ‘이집트', '알제리 조곡' 등으로 창조되어 전해지고 있다.

특히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프리카'가 대표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곡엔 생상이 가장 좋아한 여행지 중 하나인 북아프리카의 다양한 토착 노래와 춤에서 가져온 요소들이 가득하다. 특히 곡의 곳곳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음계와 색깔, 전체를 관통하는 생동감 있는 리듬이 참으로 매력적인데 생상이 직접 연주한 이 곡의 카덴차 음원이 남아있어 더욱 특별하다. 이렇듯 작곡가가 남긴 연주 음원은 참으로 가치가 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곡에 대한 작곡가의 의도를 뚜렷히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69세의 나이에도 빛나는 그의 연주력도 확인할 수 있어 더욱 반갑고 뜻 깊다.

1896년 그의 나이 61세에 완성된 피아노 협주곡 5번도 아프리카를 소재로 작곡했는데 이 곡의 부제는 ‘이집트인(Egyptian)’이며1870년대부터 생상이 자주 여행하던 이집트의 고대 수도, 룩소르(Luxor)에서 작곡했다. 이 곳은 유적으로 남아있는 신전과 멤논의 거상, 왕가의 계곡등이 유명한데 생상의 이 곡에는 이러한 고대 이집트의 흔적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감있게 묘사되고 있다. 특히 2악장은 나일강의 뱃사공들이 부르는 ‘누비아의 사랑노래’를 모티브로 작곡됐으며 도시 중심을 흐르는 나일강의 풍경과 여러 소리들을 작품에 생생하게 담아 표현하고 있다.

비록 음질은 좋지 않지만 그 옛날, 빈 오선지를 들고 아프리카 곳곳을 누비며 이국적인 요소들을 클래식과 접목시키려 노렸했던 ‘아프리카의 프랑스인’, 생상을 상상하며 감상해보자.

/글 이주용(전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