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9월 02일 14시50분
[아침발걸음]손빨래가 행복을 찾아 줬다면
청소, 설거지, 세탁기 이용한 빨래 등 집안일은 시간 될 때나 하는 일로 치부하며 규칙적으로 하지는 않았는데 매일 손빨래를 하고 있다. 몇 달 전에 읽었던 책이 빨래하는 습관을 만들게 한 것 같다. 작가가 말한 그 느낌이 무언지 아주 조금 알게 됐다.
“나를 구원한 것은 ‘집안일’이었다. … 중략 …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월급이 꽂히지 않더라도 하루하루 그냥저냥 맛있는 것을 먹고 깨끗한 옷을 입으며 잘 정돈된 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인생, 의외로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50에 퇴사하고 도시가스도 냉장고도 없이 작은 방에서 프리랜서로 혼자서 생활하는 여성이 있다. 아사히신문사에서 논설위원, 편집위원 등으로 나름 잘나가는 언론인이었고 돈도 벌었으나 먹고, 입는 일에 모두 돈을 쓰면서 지치고 힘겨운 생활 접고서 새로운 삶을 찾은 ‘이나가키 에미코’가 쓴 의 한 구절이다. 그녀는 자신을 해방시킨 일이 청소와 빨래였다고 고백한다. 누구 추천이었는지 몰라도 어쩌다 책을 사서 냉면 먹듯이 후루룩 읽었다. 걸레와 속 옷 몇 장, 옷 몇 벌, 거기에 냉장고도 없이 혼자서 생활하는 저자 삶을 엿보다가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삶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생각이 많았다. 새벽에 일어나서 가장 행복해하는 게 전날 빨아서 걸어놨던 걸레를 가지고 집안을 구석구석 닦고 청소하는 일이라고 했다.
요즘에 더위 먹었는지 만사가 귀찮고 피곤하다. 잠도 자꾸만 깨고 아침이 힘들다. 운영하는 기관에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계획했던 일 중 살짝 삐꺽거리는 것도 있었고 생각도 많았다. 머리 아픈 날이 반복됐다. 쉬는 월요일 늦게 일어나서 샤워하고 밥 먹고 책 읽고, 전화 오는 거 응대하다가 멍하게 있었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피곤하고 귀찮다고 느끼는 것도 열정적으로 했던 일이 대부분이다. 가슴 설레고 무언가 이루어 가면서 느꼈던 그 느낌, 그 감정은 무엇이고 지금은 왜 이런지도 돌아봐야 한다. 신기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 누구를 만나면 또 다시 새롭게 끓어오르는 열정은 계속해서 돌아간다. 화나는 일, 분노 제공자를 만나도 그 일의 원인은 돌려놓고 보면 전적으로 내 문제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어쩌면 모든 게 내 문제일 수도 있겠다.
올바른 삶도 없고, 모두가 같이 맞추어 가야 할 일상도 없다. 그저 자신이 자신을 알아 가면서 그 환경에 맞추어서 행복이라는 그 무엇을 찾아가는 일이 우리네 인생이 아닌지 싶다. 그 행복이 작은 방에 혼자 살면서 걸레질을 하고 속옷을 빨며, 오후에 잠시 카페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일만으로 가슴 충만한 행복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세상 부조리에 비판적 관점을 갖고 살며 무언가 변화를 바라지만, 그 안에서 소소한 삶의 행복과 감사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는 것. 그렇게 살아야 하지만 이 순간은 이렇게 살고 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은 자기 감정을 자세히 알아 가려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왜 화가 나는지, 가끔은 분노까지 이는지, 밖이 아닌 내 가슴 안을 조금 더 깊이 봐야겠다. 행복이 무언지 모르지만 그 감정선은 조금씩 알겠다. 빨래를 하면서 돌아 보는 그 순간이 왜 이렇게 좋은지.
/정건희(청소년자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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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9-0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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