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9월 01일 14시55분
[신생전북]천명, 시천주, 천주가 대립하고 소통하는 전주
38 전주이야기 : 시천-주와 천주의 마을
1. 동과 서가 만나는 경기전과 전동성당에서
천명은 성리학 조선이요, 시천-주는 동학혁명이요, 천주는 서학의 근대다. 초록바위에서 동서고금의 일을 회심하고 내려왔다. 풍남문에서 팔달로를 건넜다. 동서로 뻗은 태조로가 전동성당과 경기전을 남북으로 가른다. 전동성당이 남쪽이요, 북쪽으로 경기전이다. 전동성당은 천주(天主)를, 경기전은 임금을 모셨다. 전동성당과 경기전을 관광하지 않고 견문(見聞)한다. 동과 서의 정신이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섰다. 동서의 대립과 공존이 한눈에 이는 한 장소의 서로 다른 혼이다.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버림이 아니다. 옛과 오늘, 동과 서를 동시에 생각한다. 서로 다른 천지이되, 다름으로써 같음을 생각하고, 같음으로써 다름을 함께 할 일이다. 달라도 함께 사는 천지다. 동이구득(同異俱得)이다.
왕조시대의 왕은 통치자 왕이 아니었다. 당대의 인식에서 왕은 천명을 받드는 이였다. 천명은 상나라(은나라)의 상제를 추방하고 주나라가 도입한 질서다. 주족(周族)의 천(天)으로 상제의 명령을 천명으로 개벽한 것이다. 천명의 담지자는 왕과 사대부지 민중이 아니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 어진을 모신 곳이나, 장소의 혼으로서는 천명을 받드는 곳이다. 민심이 천심이라면 왕심이 천심일 리가 없다. 그러나 조선의 천심은 왕심이고, 그를 받드는 사대부심이고, 민심은 통치의 대상일 뿐이었다.
유학의 천명을 진화가 아니라 개벽한 것이 동학의 시천-주(侍天-主)다. 천주를 모심이 아니고 천을 모신 님이라는 뜻이어서 시천주가 아니고 시천-주라 쓴다. 삼라만상이 모두 하늘이니 민심이, 자연심이 곧 천심이 되었다. 유학을 뒤집는다. 민심과 자연심을 받들면 그대도 나도 천자가 된다. 그게 시천-주다.
서구제국의 기독교가 아닌 서양민중의 기독교 천주와 동학의 시천주가 다르지 않다. 전동성당이 천명을 모신 경기전 10여 미터 앞에 건립되었음은 제국의 기독교가 서양선비다운 맛이 없이 서구제국의 폭력을 대리한 것이었으나, 근대의 지금에서 서양민중의 천주와 동학의 시천-주를 서로 배우며 자연과 민중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민중의 소리가 개벽한 천명이다. 그 천명을 듣는다. 민중의 눈이 하늘의 눈이요, 민중의 소리가 하늘의 소리이다.(天視自我民視천시자아민시 天聽自我民聽천청자아민청-書經 泰誓中 서경 태서중) 오늘의 천지가 어떻게 가야 하는가?
처음에는 전주의 전동성당을 태조 이성계의 유적지인 오목대에 지으려 했다. 전주 선비들이 반대 상소를 올렸다. 서학이 이곳 저곳으로 몇 번을 시도하고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었다고 한다. 드디어 조선의 황혼인 1908년에 착공했다. 하필이면 경기전 앞이며, 그 양식도 비잔틴요소를 혼합한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조선에 왔으니 조선의 한옥으로 지을 수는 없었나? 그것이 다르되 공생하는 것이 아니던가? 전동성당은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그러나 역사로 생각하고 뜻으로 보니 오만방자한 것이다.
전주시 팔달로, 동서고금이 서로 사통팔달하는 꿈을 꾼다.
2. 개화에 대응하는 개벽화의 동학
잠시 환영을 보았다. 1894년 5월 말(음력) 전주 삼천에서 숙영하는 동학군들이 노는 모습을 떠올렸다. 전주부성 입성 전야다. 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군영의 온갖 재주꾼들이 소리하고 풍물을 친다. 곱사등이 춤을 추니 허리가 펴지고, 앉은뱅이 춤을 추니 일어선다. 심봉사가 새 세상을 보는 개안(開眼)잔치를 벌렸으리라. 서학의 전동성당 앞에서 동학을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근대는 동학이 만들지 못하고 서학이 만들었다.
유학의 향교와 서원이 동학의 '접'(接)으로 개벽했다. 사대부와 선비의 천하가 무지랭이 민중의 시천-주(侍天-主)로 개벽했다. 눈이 번쩍 띄였다.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베 짜는 아낙이, 코흘리개 어린 것이, 천한 노비가 하늘이라니, 맞상에서 진지를 나누다니, 청상과부를 개가하라니, 부인을 공경하라니, 공감하니 일어서지 않을 수 없었다. 향교와 서원을 뛰어 넘었다. 접과 접이 장소의 혼으로 삼천리 경향각지로 연결되었다. 때는 천하대란의 난세였다.
개화당이 있었다. 동도서기(東道西器)가 아니었다. 동을 접고 서에 홀렸다. 조급했다. 동도로 서기를 접하지 않았다. 무능하고 게으른 개화당들이 일본의 접을 만들었다. 청과 공존한 조선처럼 일본과도 공존할 줄 알았다. 하니 무식하고 게으른 것이다. 오늘의 개화당은 미국의 접을 만들고 일본의 접을 지키고 있다. 유학을 진화시키지 못한 정체된 사림들이 위정척사했다. 위정이 조선을 사랑하고 약탈자 서학을 척사함이 그럴듯하나, 과연 고이면 썩는다. 스스로를 경장하지 못하고 동학과 서학을 사악한 것으로 척사했다.
시천주 인내천! 반외세, 반봉건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드러난 형세만을 보는 것이다. 천지를 민족으로서 근대국가로서 쪼개려 한 것이 아니다. 동학은 자주적 근대 국민국가의 길이 아니다. 근대 너머 오래된 미래로 동학혁명을 본다. 시천-주에 어찌 피부색과 말의 다름, 남녀노소가 작동하겠는가. 동학은 패도로서 천지를 교란하는 천지교란자에 대응한 것이다. 일본 민족국가에 대응한 것이 저들과 같은 조선 민족국가였던 것인가. 포식자들의 헛세계화로 사멸해가는 민족국가라면 저 동학의 혼인들 온전할 것인가? 헛-세계화에 대응하는 진세계화로 오늘의 동학을 다시 새겨야 하는 까닭이다. 저 서구의 논리는 패도의 헛-세계로 자본의 십자군일 뿐이다. 민주교조, 자유교조, 사회교조, 민족교조에 맞서 다시 신동학을 호출하는 까닭이다.
3. 국가를 매개하지 않는 연합의 연합으로 사통팔달한다
우리나라의 근대는 이병한의 말처럼 천하대란 춘추전국시대였다. 개화, 위정척사, 동학, 서학이 대립하였지, 공진하지 못했다. 오늘의 민주파와 성장파는 개벽을 척사하고 자본을 위정한다. 서구로부터 이식된 근대 개화의 터전에서 개화파의 좌파는 사회주의와 민주파로 우파는 반공 수구자유주의로 분단되었다. 2개 주권국가가 탄생하였으나 보국안민의 광복은 오지 않았다. 개벽파는 사라졌다.
근대의 비상시국에서 동학의 시천주(侍天-主)와 서학의 천주(天主)가 같은데, 어찌 동과 서과 공명하고 공진하지 못하겠는가? 다만 서학의 십자군교도들이 근대 백여 년을 전쟁과 침탈로 새겼을 따름이다. 욕망자 개인의 질서화인 민주교도들이 민심이 없는 투표 기술인 민주로서 역사의 종언을 외친다. 민주는 권력의 합법성 장치에 불과하다. 자유교도들이 네 마음이 내 마음인 사랑과 연대의 자유의지를 시장자유로 대체하여 만세삼창을 부른다. 당을 천명의 담지자로 하는 프롤레타리아독재 사회주의로 역사의 종언을 노래한다. 자유교도, 사회교도들에게 대안은 없다. ‘다른 백년’은 없다. 자유교도의 대한민국과 백두혈통 주체교도들이 통일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고백해야 한다.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남은 것은 희미해지는 민족뿐이다. 평양이 삼성시가 되고, 서울이 더 큰 서울이 되는 것, 서울이 평양이 되는 게 통일이 아니다. 각기 자신의 삶을 사는 지역 연합의 연합이 국가의 틀에 메이지 않는 것이 통일이다.
‘다른 백년의 기획’이 필요하다. 전주 한옥마을 전동성당 앞길 태조로를 또 다른 백년 창업의 ‘태조로’로 여긴다. 정여립의 천하공물과, 그대가 나이고 하늘인 것의 인내천의 김개남과 전봉준! 무명의 민중녹두들! 하여 전라도 전주, 장소의 혼으로서 개벽을 호출한다. 무릇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잘 배우고 행하는 것이 개벽의 출발이다. 민주에 머물지 않고, 만인만물의 지구만주(萬主)를 생각한다.
마을과 마을을 연대한다. 연대된 마을들이 헛-세계화가 아닌 진-세계화의 천지 마을들과 교류하고 협력한다. 불통의 동서고금을 소통의 동서고금으로 한다. 좌/우, 진보/보수의 진영을 벗어나 국가를 매개하지 않는 만주(萬主)의 지역연합과 연합의 연합, 사회와 자연의 연합, 자생자화(自生自化)하는 ‘마을시천-주’, ‘마을천주’를 품는다. 민과 자연이 천이라면 동서학의 시천-주와 천주가 공생공진할 것이다. 한 나라 안에서 이 마을과 저 마을은 다를 수 있으며 그래야만 한다. 보수 마을이 있고 진보 마을이 있다. 원하는 그것이 그것이게 한다. 국가에 의해 표준화된 복사 마을을 거절한다. 천하대란의 난세에서 또 다른 백년의 기획으로 경향각지에서 사통팔달하기를 염원한다.
창업의 ‘태조로’에서 나와 사통팔달의 ‘팔달로’로 접어든다. 전라감영 옛터로 간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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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9-02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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