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8월 25일 16시29분
[메아리]성묘와 시제(時祭)
조상 섬김은 근본으로 돌아가서 그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다
지금도 설날이나 추석 때에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귀성(歸省)이라고 하여 그 목적이 성묘에 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도 성묘를 위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간다. 설날이나 추석 때면 민족적인 대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도시에 살면서도 고향을 잊지 못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맥으로 항상 원초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날에 세배를 마친 다음에는 조상의 산소에 가 술 안주 과일 등을 가지고 가서 묘 앞에 차려놓고 절을 한다.
묘역에 가면 우선 사역(莎域)을 돌아보고 눈이 왔으면 눈을 치운 다음 절을 한다. 봄에 잔디가 나올 때 조상의 묘를 손질하는 당시의 성묘 풍속에 따라 모제가 나온 것이다. 묘제의 축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즉 계절의 기운이 흘러서 바뀌고 비와 이슬이 내려 봉분을 적시기 때문에 새로히 봉문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氣序流易 雨露旣降 聸掃封塋 : 기서유역 우로기강 첨소봉영)하는 것이 그것이다. 성묫길에는 나이 많은 어른이 자손들에게 조상의 효열담(孝烈談)을 들려준다.
할아버지가 손자 손녀들의 손을 잡고 눈길을 가며 가문의 내력을 일러주는 정경은 한폭의 전통 한국화와 같은 것이다. 성묘는 설 때와 한식 추석날에 많이 하고 7월 벌초 때에도 많이 한다. 설 성묘의 날짜는 원단(元旦)의 주가 되어 대개 초닷새까지 끝마치고 먼곳의 자손들은 그 밖의 날에도 한다. 생존한 어른에게는 세배를 하지만 이미 사별한 조상에게도 생존때처럼 인사를 드린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성묘는 다른 무엇보다도 선조의 기원을 찾는 데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민족을 발견하게 된다. 혈족이 부족(部族)을 이루고 부족이 민족을 이루었다면 선대의 분묘는 민족생성의 천년역사를 느끼게 한다. 이는 어른이기 전에 자연으로 우러나는 정감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상에 대한 공경은 어느 민족이나 다 있는 것이지만 그 농도에 있어 우리민족처럼 현저한 민족은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기에 정부는 그동안 “민족의 날”로 정했던 구정을 1998년부터 “설날”로 개명하는 동시에 3일간의 연휴로 하기로 한 것이다. 다음으로 시제(時祭)는 춘하추동의 길일이나 절일에 반드시 제사이다. 음력 10월 보름을 전후하여 시제가 있다. 시제는 4대 조상까지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지만 5대 이상의 조상들에 대해서는 10월 15일을 전후하여 묘제(墓祭)로 한번에 제사를 지냄으로 시제 또는 시사(時祀) 시향(時享)이라고 한다. 즉 예조에서는 묘제라고 또는 세일사 시사 시향제라고도 한다.
예서에 나타나고 있는 제례의 종류는 사당제 사시제(四時祭) 이제(檷祭) 기일제(忌日祭) 묘제(시향제)의 다섯가지가 있다. 사당제의 경우 신알(晨謁) 출입 참례(參禮) 천신(薦新) 고사의 다섯종류가 있다. 이제는 부모의 제사를 말하는 것이며 기일제는 4대 조상의 휘일(諱日)에 올리는 제사이다. 정월 초하루와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며 돌아가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기제(忌祭)를 지내기에 제삿날이라고 하면 기제를 말한다. 기제는 3년상이 지나고 나서 곧 대상(大祥 大忌) 다음 해부터 죽은 사람의 돌아가신 날 저녁에 지내는 제사를 말한다. 그날 첫 시간에 제사를 시작하는 것은 하루를 조상을 추모하는 날로 삼자는 뜻이요 닭이 마지막 울어 끝나는 것은 신령은 날이 새면 인간세상을 떠나 자기 사는 곳으로 간다는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기제는 4대조 까지만 지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 위의 선조는 시제나 절사만을 지낸다. 시제는 춘하추동 사계절 중 가운데 달에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을 골라서 지낸다. 주자의 (가례)에 나타나 있는 묘제의 절차는 성묘 제의 토신제의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루 전날 목욕 재계하고 해뜰 때에 성묘한다. 성묘하는 절차는 묘에 가서 재배한 다음 묘 주변을 이상이 없나 세 번 돌면서 주위를 살핀다. 그러나 10월 시제는 추수가 끝나고 10월 상달에 예로부터 전해오던 추수감사의 성격을 띤 제천(祭天)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를 테면 앞서 말한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이 그것이다. 죽음은 단절된 세계가 아니라 하나로 이어지는 생활 속의 이쪽과 저쪽이었다. 이러한 관념에서 조상을 숭배하고 집안의 대를 잇는 것을 효의 으뜸으로 삼았던 조선 시대의 유교적 정신생활이 아직까지 뿌리깊게 남아있는 것 같다. 또한 기제사와 차례는 혈연끼리의 단합을 꾀하는 배타성도 있지만 조상의 유업을 오늘에 되살리는 매개 역할도 해준다.
제사는 보본(報本) 사상에서 나왔다. 곧 근본으로 돌아가서 그 은혜를 갚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조상의 추모의 뜻보다 형식에 치우치는 경우가 많다. 성호 이익 역시 가난한 사람은 밥과 물만 떠놓고 공경한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면 좋다고 하였고 비록 넉넉한 살림이라도 지나치게 제수차리는 것을 경계했다. 제수에는 복숭아와 개고기는 쓰지 않는다. 복숭아는 털이 있는 과일로 귀신을 쫓는다는 것과 개고기는 인간의 혼령과 밀접하다는 속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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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8-2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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