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8월 22일 14시41분
[전북의 창]산고수장(山高水長)한 지리산에 다녀와서
어렸을적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더운날 이면 어머니께서는 마을동리 사람들이 함께 먹는 공동우물에 가서 주전자에 물을 받아 오라고 하셔서 심부름을 자주 다녔다.
샘이 깊고 두래박 으로 물을 길러 올리는데 무섭고 힘들었지만 이가 시리도록 시원하고 차가운 맛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게다가 물을 가득채운 주전자는 시원한 빙수물로 채운듯 서리가 내려앉아 연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집에 와서는 그 물로 밥 말아 풋고추며 오이에 된장을 찍어먹는 그맛은 지금도 잊을수 없다.
요즘에도 그런 우물이 있을까? 여름엔 서기가 감돌고 겨울엔 얼음을 녹이는 포근한 온기가 감도는 살아있는 물을 찾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얼마전 가족과 함께 지리산에 갔다.
백무동에서 세석거쳐 촛대봉까지 당일치기 산행으로 산린이가 일행중에 있어 9시간 남짓 걸었던 것 같다.
한국인의 기상(氣像)이 발원된 지리산(智異山)은 우리나라 최초 국립공원이며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불리어졌다.
과히 지리산의 여름은 시원하고 장쾌했다.
마치 산이 살아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산고수장(山高水長)한 지리산 세석에 이를 때까지 햇볕 한줌 들어올 틈없이 빼곡한 나뭇잎터널의 오솔길은 자연이 만들어낸 예술(藝術)의 극치(極致)였다.
산이 아름다운 것은 오솔길이 있어서이고 하늘이 아름다운 것은 그리움이 있어서 일게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계곡수, 새소리와 서늘한 바람은 피로를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바위틈사이에서 흘러내리는 석간수와 세석식수는 등골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청량감로수(淸涼甘露水)였다.
어렸을적 기억에 남아있는 그맛을 여기 지리산에 와서 다시 만날줄은 몰랐다.
그것은 지리산이 아직까지는 건강한 생태계와 지하수맥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증거다.
우리인체가 선가(禪家)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장수하고 싶다면 지리산에 자주오고 자연환경을 잘 지켜나가면 될 일이다.
이곳 지리산의 사전적 의미답게 우매한 사람도 지리산에 들면 현명해진다고 하는데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시원해진 느낌은 덤 이다.
모든 생명이 살아 숨쉬는 공간 국립공원, 이곳에서 만큼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처럼 복잡한 생명의 고리가 입체적 그물처럼 연결되어 모든 생태계가 안전을 보장받고 국가의 보호를 받는곳 이며 동식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여야 한다는 것을 절감했다.
남명 조식선생께서는 지리산 기슭에 은거하며 많은 선비를 길러내며 선비정신의 상징적 인물로 오늘날까지 추앙받고 있다.
-간수간산(看水看山):물을 보고 산을 보고
-간인간세(看人看世):사람을 보고 세상을 본다 라는 명구가 빛을 발한다. 되새겨 볼수록 도인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 싯구다.
특히, 지리산 산행은 원시성(原始性)과 야생성(野生性)이 살아있는 혹한의 계절에 하는 것이 깊은 맛을 느낄수 있는 것 같다.
지리산 깊은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건배사로 자주 애용했던 싯구가 생각이 났다.
“청산은 어찌하여 만고에 푸르르며 유수(물)는 어찌하여 주야로 흘러 그치질 않는고 우리도 그치지 말고 만고상청(萬古常靑)하리라”(이황선생의 도산십이곡중)
/정장훈(국립공원공단 전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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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8-23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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