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8월 10일 14시58분
[메아리]한없이 밝은 나라, 어두운 그늘
2024 하계올림픽을 보는 밤
그런데, 원고 작업을 하다 잠시잠시 밤 TV를 켜면, 하계올림픽에 나선 우리나라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장면이 나오고, 그럴 때마다 메달을 딴 소감들을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필자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우리 세대가 어디 큰 대회에 나가 메달을 따던 시절의 수상 소감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소감을 말하는 그 선수들의 표정이 우리 세대와는 딴판으로 한없이 밝다. 저들이 정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맞나싶을 정도다. 그 다음엔,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마다 구구절절이 너무나 야무지고 자신에 차 있고 조리정연하다.
폐막을 하루 앞둔 10일, 미국 NBC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화제가 된 선수 10명을 발표했는데, 그 중에는 사격 여자 공기권총 10m에서 은메달을 딴 우리나라 여자 사격 선수 김예지[임실군청 소속]도 포함되어 있다. NBC는 김예지를 10대 화제 선수 가운데 두 번째로 소개하면서, “온라인상에서 팬들로부터 사격 실력과 스타일로 화제가 됐다”며 “007(제임스 본드)도 넘어설 기세”라고 평가했다.
이보다 좀 앞서, 지난 5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국제사격연맹(ISSF) 사격 월드컵 25m 권총 경기에서 김예지는 해당 경기에서 42점을 쏴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이 영상을 본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이자 ‘엑스’의 소유주인 일론 머스크도 김예지에게 찬사를 보내서 가로대, “액션 영화에도 사격 세계 챔피언이 나온다면 멋질 것 같다. 김예지를 액션 영화에 캐스팅해야 한다. 연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일성을 덧붙인 바 있다 한다.
그런데, 이번 2024 파리 하계올림픽에 참가한 김예지는 아차 하는 실수로 은메달을 따고서, 이런 칭찬을 한 이론 머스크에게 답하여 가로대, “이번엔 내가 아차 실수로 은메달을 땄지만, 다음번 올림픽 때에는 금메달을 따고, 머스크도 당신도 만나줄게. 그때까지 기다려줘!”라고 했다는 소식이다.
이러고들 있는 우리 자식 세대들의 2024 파리 하계올림픽을 보며, 우리 세대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우리 세대엔 어디 가서 금메달을 따거나 챔피언이 되면, 우선 울고불고 통곡부터 했다. 아직도 ‘한’이 맺힌 세대였기 때문이다.
2000년 12월 말, 필자가 한국연구재단 해외파견 교수로 선정되어 미국으로 떠나기 직전, 평소 알고 지내던 가왕 조용필 형이 전화가 왔다. “이번 크리스마스 날 저녁 제주도 모 호텔에서 내가 디너쇼를 하는데, 잠깐 와서 같이 있다가 가면 어때.” 하는 전화였다. 촌놈이 해외로 1년 동안이나 처음 살러 나갈 것도 그렇고, 형도 보고 싶고 해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 오라는 호텔로 갔다. 그날,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같이 방안에서 음식을 시켜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형이 이런 말을 내게 했다. “나는 ‘한’을 아는 세대하고 같이 노래를 부르며 살았어. 앞으로 ‘한’을 모르는 세대들 하고는 난 음악을 못할 것 같아!”
나는 이 말을 듣고 잠시 답변할 말을 찾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 혼란과 6.25 한국전쟁으로 겹겹이 쌓인 민족사의 ‘한’을 풀기 위해, 6.25 한국전쟁 직후부터 태어난 우리 세대들까지도, 그 ‘한’을 푸는 문화지도 속에서 살아와야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본 우리 자식 세대들은 우리와는 전혀 달랐다. 어느새, 저들의 얼굴에서는 우리 얼굴에 남아 있던 그 ‘한’의 그림자들이 말끔히 걷혀 있었다. 그들은 환하게 웃을 줄을 알았다. 그리고 세상 최고 갑부 CEO한테도 이렇게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조금만 기다려 줘요. 내가 금메달 따는 날 가서 만나줄께요!”
2022년~2023년 세계통계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종합 국력 순위가 (군사력을 포함해서) 세계 6위로 나오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아래 순위로 처져 있는 것으로 통계들은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밝고도 희망찬 우리나라의 여러 분야 중에 오직 한 분야, ‘정치’ 영역만은 아직도 한심하기 그지없는 그늘진 곳이다. 국민, 그것도 주로 우리나라 미래를 책임질 그 아까운 젊은이들이 159명이나 목숨을 잃었어도, 그 한을 풀기 위해 그 유족들이 오체투지를 하며 먼저 세상을 떠난 자식들의 사진들을 들고 길거리를 헤매고 다녀도, “법적으로 해결하라”며 어느 놈 하나 책임지고 나서는 놈이 없고, 젊은 군인이 상관의 잘못된 명령으로 목숨을 잃었어도 책임지고 나서는 놈 하나 없으며, 최근에는 민족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독립기념관 관장을 뉴라이트 극우파 계열의 인물로 임명을 해서 그쪽 원로들에게까지 깊은 상처를 주고 있다 한다.
이렇게 꿈인가 생신가 싶게 모든 분야가 드높이 발전한 우리나라가, 왜 어째서 ‘정치’ 그것만은 아직도 이 모양인가. 부끄럽지 않은가.
/김익두(사단법인 민족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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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8-1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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