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조선 건국자 이성계의 본향이다
[원지의 문(文)·화(畵) 스케치] 8. 풍남문
전주 풍남문(豊南門, 국보 제317호)의 코드 가운데 하나는 건물 곳곳에 자리한 해태다. 하지만 해태들이 건물 안쪽 상층부에 자리하고 있어 밖에서는 잘 보이질 않는다. 이곳의 해태는 전주를 지키는 수호신의 개념과 1767년 정해년(丁亥年)의 큰 불 등 화마로부터 보호를 뜻하는 상징에 다름 아니다. 해태는 불을 누르는 짐승으로, 물과 연결, 바다 해(海)자를 써서 해타(海駝), 해태(海苔)로 적기도 한다.
또, 해태 앞에서는 어떤 신하라도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했던 만큼 왕권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풍남문의 해태 역시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랜드 마크인 셈이다. 풍남문의 문루 1층과 2층의 화반(花盤, 익공계 건물에 기둥과 기둥 사이의 장식판)에 해태 등 서수 10여 마리가 서로 각기 다른 모양을 한 채 오늘도 전주를 지키고 있다.
전주 부성의 4대문 터를 알리는 빗돌 전문에는 ".....남문에는 3층의 초루를 세워 명견루(明見樓)라 하고....1767년 이른바 정해년 대화재로 남서문이 소실됐다. 이해 9월에 도임한 홍락인관찰사가 이를 중건하고 남문을 풍남문(豊南門) 서문을 패서문(沛西門)으로 이름을 고쳤다" 고 되어 있다.
우리가 현재 보고, 알고 있는 풍남문은 원래 명견루라 불리웠다. ‘명견루(明見樓)’라는 이름은 음향오행설에 의해 붙혀졌다. 오행설에 의하면 남쪽은 밝음(明)이기에 전주부성의 남문에 명견루(明見樓)라는 이름을 붙였다.
명견루(明見樓)는 3층의 초루로 지어짐으로써 전주부성의 정문임을 당당히 내뿜고 있었지만, 정해년 대화재로 인해 조금은 작아진 2층의 초루로 현재의 풍남문이 됐다.
남문을 풍남문, 서문을 패서문이라 칭한 것에는 전주가 조선 건국자 이성계의 본향임을 내포하고 있다. ‘풍패지향(豊沛之鄕)’이란 건국자의 고향을 의미하는 말로써, 한나라 태조의 고향이 풍현의 패 였던 것에서 비롯됐다.
풍남문의 풍(豊)과 패서문의 패(沛)로 전주가 조선 건국자 본향임을 나타내고 있다. 전주 풍패지관(豊沛之館)의 현판 또한 조선 건국자의 본향이 전주임을 나타낸다.
풍남문의 ‘호남제일성’이라는 현판은 전주가 호남의 수부(首府), 즉 호남행정의 중심지를 의미한다. 전주성안에는 전라감영이 설치, 제주를 포함 전라남북도를 관리했던 호남의 심장부였다. 또, 전주는 조선시대 한양, 평양과 더불어 3대 도시였을 만큼 큰 도시로, 전주부성의 정문이였던 풍남문이 지니는 의미는 더욱 크다./글=이종근·그림=원지(XU WENJI)
지면 : 2024-08-08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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