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전북신문

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8월 04일 14시38분

[신생전북론]시장에서 다투는 시민(市民)인가, 모시는 시민(侍民)인가

34. 신생하는 마을 – 3

시장,
이윤만이 추구되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을
모시는 장소로 거듭나야

도농직거래·공정여행·공정무역
협동조합·사회적 기업 등
윤리적 소비 이뤄지는 곳으로

전주 동문사거리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서로 돕는 마을이 사라짐을 안타까워 한다. 지역적 삶의 양식은 가능하다. 새 해가 뜰 것이다.

전주 경기전서문길 공유지에 장이 열렸다. 전국적 표준의 삶이 아니라 전주만의 삶의 양식을 생각해 본다.

1. 일할 권리인가, 좋은 삶인가

‘일할 권리’인가? ‘좋은 삶을 누릴 권리’인가? 어떻게 살든 일자리만 많으면 좋은가? 우리는 삶의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질문을 바꿔 본다. 우리는 자신만의 삶을 가졌는가? 더 크게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자치를 가지고 있는가? 지역적 삶의 양식을 가지고 있는가? 지역마다 서로 다른 생산, 교환, 소비, 노동, 문화를 가졌는가? 몇 해 전 대한민국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누리집을 조사해 보았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류가 많았다. ‘행복한 문화 복지’류도 많았다. 말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문제는 당이 다른데도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구호가 같다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이 당 저 당이 서로가 서로의 짝퉁이다. 중앙과 서울의 짝퉁 천국이다. 울산과 서울을 못 따라가 안달이다. 전북은 전북식으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고은 시인은 이렇게 꼬집었다.

삼천리강산이 모조리 서울이 되어간다 / 오, 휘황한 이벤트의 나라 / 너도나도 / 모조리 모조리 / 뉴욕이 되어간다 / 그놈의 허브 내지 허브 짝퉁이 되어간다 / 말하겠다 / 가장 흉측 망측하고 뻔뻔한 중심이라는 것 그것이 되어간다 / 서러웠던 곳 / 어디서도 먼 곳 /못 떠나는 곳 / 못 떠나다 / 못 떠나다" - 고은 「내 변방은 어디로 갔나」 일부 -

2. 지역만의 삶의 양식을 찾아야 한다

일자리만 많으면 어떻게 살든 좋은가? 이런 생각은 안 해보는가? 기업을 유치하는 대신에 지역의 생산, 노동, 소비, 교환 관계를 바꾸는 혁신적 상상은 안 해보는가? 고용주의 뜻에 따른 임금노동이 아닌 스스로의 자치노동과 상호부조적인 연대노동은 없는가? 얼굴도 모르는 대기업 식품이나 가구가 아닌 이웃의 농군이나 목수의 것을 소비할 수는 없는가? 소농 가족만이 아닌 지역별 거점을 가진 협업농은 불가능한가? 학교와 아파트 도시마을마다에 생필품을 생산하는 공동작업장을 설치할 수 없는가? 도심 한복판에 과수원 같은 혁신적인 도시계획은…. 주민자치센터마다 도농직거래가 아닌 도시민과 함께 하는 연합농공과 연합매장을 두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가? 특정 지구에 돈을 쏟아붓는 도심재생사업은 결국 뜨는 동네, 지는 동네를 반복할 뿐이다. 위에 든 예들은 분명 비자본주의적인 호혜경제이고 공동체 공유경제이다. 빈방이나 도구를 같이 쓰는 짝퉁 공유 경제가 아니다. 이것들은 지역의 노동, 생산, 소비, 교환을 바꾸는 비자본주의 호혜경제의 시작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바꾼다’는 말을 할 수 있다. 우리 민법도 이런 다양한 형태의 소유를 보호하고 있다.

3. 시장인가 장터인가

시장이 상품을 파는 곳이라기보다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자급자족의 삶을 보완하는 것으로 작동했을 때 시장은 소통의 장소였을 것이다. 시장이라기보다는 장터였다. 먼 곳의 소식을 듣고, 물자를 교환하고, 동무들을 만나고, 휴식을 하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필자만 해도 상설시장은 없고 5일장이 서는 곳에서 성장했다. 지금도 선거하는 이들은 장날을 따진다. 장터는 정치의 공간이고 여론의 장이었다. 시장은 이웃과 이웃이 만나고 유대하는 곳이었다. 과거의 장터는 ‘사회·문화·정치·경제 등 모든 관련분야가 한데 어우러진 열려 있는 삶의 총체적 마당’이었다.

오늘날의 시장은 삶의 총체적 마당인 장터와는 완전히 다르다. 노동시장, 금융시장처럼 시장은 경제적 합리성만이 극도로 추구되는 비인격적 교환관계의 총체라고 할 수 있고 실재하는 공간이 아닌 논리적 추상체이다. 장소가 아니라 사회의 원리로 작동한다. 지금은 이 추상적인 시장의 논리가 국가와 전 사회를 지배한다.

장터이든 시장이든 일하는 민들이 없으면 성립할 수 없을 것이다. 시민과 민중을 생각한다. 시민과 민중은 전혀 다르다. 시민은 시장의 민이다. 시민의 시는 저자 시(市)를 쓴다. 시민은 공화국의 권리를 실현하는 주체라고 말하지만 시민은 어디까지나 시장의 식민이다. 공화국이라 하지만 그 실체는 시장사회이다. 시장의 원리가 사회 전체를 관통한다. 시민은 시장의 원리에 지배받는 사람들이다. 시민은 시장의 원리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만 권리를 행사할 뿐이다. 불공정한 시장에서 시민의 권리는 모든 민들에게 공평할 수 없다. 시민(市民)사회는 시장사회와 같은 말이다. 힘들게 1980년대에 복원한 민중이 어느날 문득 시민이 되었다. 시민사회라니? 불편하다. 시민사회는 시장을 조금 손봐서 살자는 말로 들린다. 시민이란 결국 시장에 굴복하라는 말이다. 시장을 바로잡을 수 있는 민은 시민이 아니라 민중이다. 시민사회에 대한 논의는 시장사회를 계속하자는 말로 들린다. 시장이 문제가 아니라 시장이 사회를 지배하는 게 문제이다.

4. 시장의 식민 시민(市民)인가, 모시는 시민(侍民)인가

시민(市民, Citizen)은 사전적 관점으로, “시민은 민주주의적 자치를 통치의 기본질서로 하는 특정한 정치공동체에서 그 공동체가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완전하고도 평등하게 향유하는 개별 구성원을 가리킨다.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에서 시민을 일면적 이성에 따라 전적으로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으로 취급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아예 이런 사적 이익을 추구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개인들의 집단을 부르주아 계급으로 국지화시켜 자본주의적 계급 갈등의 원인 세력으로 지목하였다.” -「문학비평용어사전」-

시민은 긍정적으로는 시장공화국의 권리를 주체적으로 누리는 사람이고, 부정적으로는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다. ‘시민’을 어떤 뜻으로 쓰는 지는 문맥 속에서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시민이 민중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시장의 식민 시민(市民)을 민을 모시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모실 시(侍) 시민(侍民)으로 바꿔 본다. 모심은 동학의 핵심 사상이다. 동학 경전 전체가 이 모심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장은 모심의 장소로 거듭나야 한다. 경제적 합리성 즉 이윤만이 추구되는 곳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을 모시는 곳이 되어야 한다. 물건은 생명의 한울이 기화하여 된 것이다. 경물(敬物)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이 모시는 장소로 되려면 요샛말로 윤리적 소비를 하는 것이다. 도농직거래, 공정여행, 공정무역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자주관리기업 등이 모시는 경제에 해당한다. 선물경제도 한 몫을 한다. 농사를 지어서 가족, 친척, 지인에게 선물하면 받은 이는 도시의 공산품으로 답례한다. 이 선물은 시장의 가격 법칙을 파괴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때로는 위장된 주식회사인 경우도 많으나 그것은 극복해야할 일이다. 시장에서 다투는 시민(市民)이 서로 모시는 시민(侍民)이 되고 경쟁하는 시장(市場)이 상호부조하는 시장(侍場)이 되는 상상을 한다.

덧말) 국민지원금 25만 원, 삼겹살이냐 햇빛발전이냐

25만 원 공짜로 준다니 좋다. 그런데 저축할 수 있는 현찰도 아니고, 유통기한도 있고, 사용처도 제한되어 있으니 삼겹살 사 먹거나 도서 구입하기 십상이다. 13조 원이 돌면 경기부양 효과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 고비만 더 생각해 보자. 13조 원을 구조개선도 아닌 일시 경기부양책으로 쓰는 게 타당한가? 돈이 이렇게 풀리면 물가가 올라 결국 25만 원을 그 이상으로 토해 내는 것은 아닐련지. 코로나 재난지원금 아침에 20만 원 받고 물가가 올라 저녁에 30만 원을 토해 내지 않았던가? 임금은 그대로고. 국민지원금 전국적으로 약 13조원이 든다. 전북특별자치도는 약 3,615억 원이 필요하다. 전북특별자치도 243개 읍면동으로 나누면 일 개 읍면동마다 15억 원이 배정된다. 읍면동에 15억 원으로 뭉칫돈을 주면 어떨까? 사과가 아니라 사과나무를 주는 것이다.

마을햇빛발전소, 농민연합매장(로컬푸드), 마을공유작업장, 마을통합돌봄관, 친환경재생물품판매장은 어떨까? 이런 사업은 망할래야 망할 수 없다. 윤리적 이윤을 책정하고 마을주민을 고용하고, 재투자비를 제외하고 수익금을 주민에게 배당하기 때문이다. 이 모두 지구온난화 완화에 도움도 된다. 좋은 게 옳은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안하는 국힘당보다야 민주당이 훨씬 낫지만 돈을 소비쿠폰으로 지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강주영(건축시공기술사·목수·전 교육부 대표 시민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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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8-05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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