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작성: 새전북신문 - 2024년 08월 01일 14시56분
[금요수필]장맛비와 추어탕
장마철이면 농촌은 조금 한가해졌다. 남자들은 모정이나 사랑방을 찾아가 놀기도 하고 낮잠을 자기도 하며 고단했던 몸을 풀었다. 여자들은 주로 삼베길쌈을 준비했다. 산촌인 우리 집 좁은 마루엔 품앗이하러 온 할머니들이 모여 삼을 삼았다. 전짓대에 걸친 삼을 뽑아 삼 톱으로 훑어내고 손톱으로 가늘게 쨌다. 부드러워진 양 끝을 두 갈래로 가르고 그사이에 삼의 꼬리와 다른 것의 머리 쪽을 서로 맞대어 무릎에 대고 비벼 꼬았다. 이어진 실을 소쿠리에 서리며 돌아가면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실타래처럼 이어갔다. 라디오도 없었던 시절이라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빠짐없이 뉴스거리가 되었다. 특히 실수한 일이나 엉뚱했던 일이 화제가 되면 한꺼번에 까르르 웃어 마루가 들썩였다.
초가지붕을 타고 내리는 낙숫물이 마루에 들치고 천둥 번개를 동반하는 폭우가 쏟아지면 놀라서 화롯불을 지펴 벼락을 막는 연기를 피우기도 했다. 도롱이를 쓰고 쇠꼴 베러 나간 할아버지를 걱정했고, 다랑논 둑이 방천 날까 봐 비가 그쳐주길 바랐다. 천둥 벼락에 개도 놀라 뛰어 들어왔다. 흠뻑 젖은 털을 토방에서 흔들어 털면 물방울이 할머니들한테까지 튀겼다. 나무라는 소리에 눈치를 살피며 얼른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 갔다. 이내 개털이 마르는 비린내가 마루 틈새로 올라오면 개는 또 꾸지람을 들었다. 어머니가 더위를 참아가며 감자를 찌고 사카린을 넣은 보리를 가마솥에 볶아 내오면 일손을 멈추고 군입정을 했다. 단맛이 나는 볶은 보리는 먹을 것이 적었던 그 시절에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점심엔 수제비를 끓여 함께 먹기도 했다.
초가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물이 흥건하게 마당을 흘러 수채로 나가면 실개천에서 새 물을 따라 올라온 미꾸라지가 하늘에서 떨어진 듯 마당에서 촐랑거리기도 했다. 은근히 추어탕을 먹고 싶어서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고 비가 개기만 기다렸다. 이윽고 비가 잦아들면 물꼬를 볼 겸 아버지는 삽과 고기 발을 챙기셨고 나는 싸리 바구니와 우산을 들고 뒤를 따랐다. 실개천은 콸콸 흐르는 붉덩물로 넘쳤다. 논의 물꼬 자리나 뒤 도랑, 실개천 등 여러 곳을 고기 발로 훑어서 미꾸라지를 잡았다. 더러는 작은 붕어나 버들치도 나왔다. 고기 발은 주로 싸리나무나 물푸레나무 가지로 만들었지만 곱게 자란 쑥대로도 만들었다. 쑥대를 가지런히 놓아 삼단 정도 엮고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원형 손잡이를 만들어 가운데에 대고 뒷부분을 깔때기처럼 묶으면 멋진 고기잡이 발이 되었다. 개울가 흐르는 물속에 대고 장화를 신은 발로 위에서 아래로 훑어 내리면 풀더미에 숨어있던 고기가 몇 마리씩 들어와 파닥거렸다. 옹골진 놈들이 들어오면 바구니에 담는 기쁨은 컸다. 바구니 속이 불어나는 것을 보며 잡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가을 추수 때 먹는 추어탕은 제철 음식으로 일미다. 하지만 여름 장마철 궁금할 때 먹는 추어탕도 맛이 썩 좋다. 내 고향의 추어탕은 맑은 물에 잘 씻은 미꾸라지를 가마솥에 넣어 푹 삶는다. 조리로 건져서 큰 양푼에 담아 마른 삼대 한 묶음을 쥐고 툭툭 쳐 잘게 으깬 다음, 체에 걸러서 굵은 가시를 가려내고 다시 가마솥에 부어 시래기와 굵은 파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끓이면서 다진 마늘과 고추장으로 간을 맞춰 오지그릇에 담아냈다. 걸쭉하면서도 산뜻한 맛이 나고 매운듯하면서도 달짝지근했다. 금방 지은 고슬고슬한 밥을 말아 열무김치와 곁들여 먹었던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우리 식구는 어머니를 제외하면 모두 추어탕을 좋아했다. 어머니는 큰 내가 흐르는 단양리에서 자랐는데 어렸을 때 외삼촌들이 어찌나 물고기를 잡아 왔든지 그때 비린 맛에 질리셨단다.
요즘은 비가 내려도 잡을 미꾸라지가 없다. 논에는 아예 미꾸라지가 살 수 없게 된 지 오래됐고, 하천은 복합적인 수질오염 탓에 점점 물고기가 사라지고 있다. 실개천에 흔했던 미꾸라지, 붕어, 퉁사리, 기름종개, 가재 등 수많은 토종 물고기가 사라져 볼 수가 없으니 무척 아쉽다. 이렇게 장맛비가 내리면 그때 먹었던 추어탕이 넌지시 생각난다.
신팔복 수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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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 2024-08-02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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